불꽃처럼 살다 간 시인 바이런(Byron)
독서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시나 소설의 순수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역사나 철학 같은 사상 관련 책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책이 잘읽히는 시간과 공간도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필자는 상당히 오래된 습관이 하나 있다. 여름 장마와 무더위가 시작되면, 읽을 책을 골라 몰입하려 애를 썼다. 후덥지근하고무더운 여름을 피해 가려는, 일종의 도피수단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여름에도 정독하고 싶었던 책 몇 권을 준비했다. 그중 하나가 요한 페터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의 <괴테와의 대화>였다. 팽귄 출판사 영문본으로650 페이지가 넘는 조금 부담스러운 두께지만, 읽다 보면 단어들이 비교적 쉽고 문장이 평이하기 때문에 영어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고전이다.
에커만은 자신의 논문 <산문(散文)에의기여>를 괴테에게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1832년 괴테가 죽을 때까지 약 9년 동안 그의 비서 역할을 하며 보냈다. 에커만의<괴테와의 대화>는 그 9년 동안 노 작가와 거의 같이 생활하며 대화하고 느꼈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독자들에게는 시인이며소설가였고 사상가이기도 했던 괴테의 말 년의 삶을, 그리고 괴테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자평(自評), 당시 유럽 문학계의 작가들과 작품 평가를 살펴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저서라 할 수있다.
특히, 서양문학 고전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괴테와의 대화>는 풍성한 정보를 안겨 주는 귀중한 책이다. 괴테가 에커만과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했던 작품들만 정리 해도 틀림없이 알찬 독서 목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괴테가 정말 많이 언급하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이다. 괴테가 1749년 태어났고 바이런이 17 88년 생이니, 괴테가 40년 가까운 연장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바이런의 작품을 그처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바이런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블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괴테와의 대화> 서문에는, 괴테가 바이런에 대해 에커만에게들려준 이런 이야기도 있다.
"Goethe had urged him to learn Engl- ish so that he could read Byron in the original. 괴테는 그(에커만)에게 바이런의 작품을원어로 읽어 볼 수 있도록, 영어를 공부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바이런은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이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을꾸밈없이 노래한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이었다. 바이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도덕을 경시한 방탕한 사람"이라는 비난과 "신과 사회를 향해 반기를 들며, 시대의 도덕성에 강력히 저항했던 위대한 시인"이라는 평가다.
"천재이자 미남이었던 그는 높은 사회적지위와 드높은 정신을 소유했으며, 그가 만나는 모든 남녀에게 매력을 과시하며, 자유를 추구하며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36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짧은 시, 긴 시, 서사시, 서정시, 이야기시, 극시 등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시를 썼다. 그의 대담한 언어 구사는 시에 문외한인 독자부터 시에 대한 안목이 높고 세련된 독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자들을매혹한다. 그의 언어는 빠르고 명료하고직접적이면서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런 시선/ 윤명옥 옮김 참조)
바이런을 영국을 넘어 유럽 문화계의 독보적 아이콘으로 만들어 준 작품은 그의 시집<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다. 1812년 발표된 이 시집은, 나오자마자 전 서구 사회를흔들어 놓았다. 시 속의 주인공 중세 소년 기사 차일드 해럴드는 동방 제국을 순례 하며 체험했던 이국의 풍물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래했다. 자유분방한 생각과 젊은날의 사랑과 우수가 깃든 그의 시는 낭만시의 정수(精髓)라는 평가를 받았다.
바이런은 그리스를 정말 사랑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비극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라는 나라 자체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바이런이 여행 중 콘스탄티노플과 트로이를 거쳐 헬레스폰투스 해협에 이르렀던 때가있었다. 역사를 바꾼 현장이면서 많은 신화를 품고 있는 이 해협어귀에서 바이런은 깊은 상념에 잠겼던 것으로 보인다. 헬레스폰투스 해협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레안드로스와헤로의 신화"가 있다. 신화의 내용을 짧게이야기하면 아래와 같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이 좁은 해협에는 아시아 쪽에 아비도스(Abydos)라는 항구 가, 유럽 쪽에는 세스토스(Sestos)라는 섬 이 있었다. 아비도스에는 레안드로스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우연히 세스토스에 있는 아프로디테 신전에 왔다가 헤로(Hero)라는 여사제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다.
레안드로스는 끓어오르는 연정을 억제할수 없어 한밤중에 헤엄을 쳐 세스토스의 헤로 여사제를 찾아간다. 그녀도 청년의 죽음을 무릅쓴 사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레안드로스는 매일밤 바다를 건너헤로와 사랑을 나누고 다시 아비도스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해협을 건너던 레안드로스는 사나운 폭풍을 만나게 된다. 그는휘몰아치는 파도에 방향을 잃고 헤매다, 결국, 익사했다. 세스토스 섬 탑 위에서 밤 새 레안드로스를 기다리던 헤로는 새벽녘에 해안가로 밀려오는 시신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았다. 절망감에 울부짖던 헤로는, 얼마 후, 탑 위에서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트로이를 돌아보고 헬레스폰투스 해협어귀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바이런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그는 옷을 벗고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신화 속의 레안드로스를 흉내 내며 바다로뛰어든 것이다.
필자도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배를 타고 건넌 일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장 가깝게 연결시켜 주는 해협의 폭은 생각보다좁다. 배를 타면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물살이 세다. 흑해에서 에게해로 흐르는 물이 이 좁은 물길을 지나기 때문에 물살은 거세다. 또, 특이한 것은, 바닷물 색깔이 유난히 검다. 그 때문인지 묘한 두려움마저 들게 한다.
바이런이 헬레스폰투스 바다에 뛰어든 것이 광기인지 용기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바이런은 해협을 헤엄쳐 건넜다. 유럽의사교계는 한바탕 요란을 떨었고, 바이런은아래의 시를 썼다.
▪︎세스토스에서 아비도스까지 해협을헤엄쳐 건너고 난 후에 쓴 시 (1)
만일, 어두운 12월에, 레안드로스가 밤마다 (어떤 처녀가 이 이야기를 모르랴?) 그대의 시냇물인 널따란 헬레스폰투스를건넜다면!
만일, 겨울 폭풍우가 포효할 때, 그가 헤로에게로 기꺼이 서둘러 헤엄쳐갔다면, 그리고 이처럼 옛날에도 그대의 파도가거셌다면, 아름다운 비너스여! 나는 이 두 사람이어찌나 가엾은지!
현대의 타락한 지식인 나로 말하면, 5월의 온화한 날이었는데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내 사지를뻗으며, 오늘 내가 공적을 세웠다고 생각하노라.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전설에 따르면, 레안드로스는 급류를 거슬러 강을 거넜다는데, 구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밖의 일은주님만 아시리, 그는 '사랑'을 위해 헤엄쳤으나, 나는'영광'을 위해 헤엄쳤으니.
누가 더 나은 일을 했는지는 말하기어려우리, 죽어야만 하는 슬픈 인간이여! 이렇게신들은 여전히 그대들을 괴롭히니! 레안드로스는 그의 노고를 잃었고, 나는 나의 장난기를 잃었으니, 왜냐하면 그는 익사했고, 나는 학질을앓게 되었으니. • • • •
바이런이 살았던 시대에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였다. 1823년 7월, 그리스 독립군은 바이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탈리아의 제노바에 머물고 있던 바이런은, 곧바로 독립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