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傾國之色) [1]
경국지색은 한무제(漢武帝: BC156~BC 87) 시대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사람의시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로 알려져 있다. 이연년은 자신의 누이를 한무제에게 바치려 했던 한의 내시이며 음악을 관장했던 관료였다. 그의 시에는 누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아래와 같은 시구(詩句)가 있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구나."
그런데, 중국 고대사를 살펴보면 한무제이전에도 4명의 경국지색이 있었다. 중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요, 순, 우는성군(聖君)의 시대였다. 그러나, 다음 왕조 인 하, 은, 주 시대부터는 왕의 세습 제도가굳어지며 탐욕과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다. 이 하, 은, 주 왕조가 멸망할 때 어김없이 경국지색이 등장한다. 하나라는 걸왕 때"말희"라는 여인으로 인해 망하고, 은나라의 주왕 때는 "달기"라는 여인이 있었으며, 주나라는 유왕 때 "포사"라는 여인으로 망조가 들었다.
세 명의 여인 중, 특히, 주나라를 오랑캐건융에게 짓밟히게 만들어, 대륙의 천자국지위를 잃게 한 포사는 중국 고대사 전환기의 중심에 있던 여인이다. 이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는 경국지색이라는 말은 포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나라는 낙양으로 천도하며 나라를 동주라 부르는, 종주국이라는 명목뿐인, 약소국으로전락하고 만다.
주나라가 종주국으로서 위신이 땅에 떨어지니, 지방의 강력한 제후들이 제각기 패권을 장악해 보려고 싸움을 시작했다. 그들은종으로 횡으로 동맹을 맺고 깨며 5백여 년간 싸움을 이어갔다. 역사학자들은 그 시대를 가리켜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라 불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시대를 구분하면, 주나라가 천도한 BC 770년 이후 약 2백년을 춘추시대라 하고, 그 후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 약 350년을전국시대라 부른다. 역사소설 <列國志: 열국지>는 그 춘추와 전국 시대 약 5백여년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다.
춘추와 전국 시대를 나누는 때를 월나라 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중국 고대사의전환기에 또 한 명의 경국지색이 등장한다. 춘추전국 시대 최고의 미녀 천하절색 서시(西施)다.
춘추의 시대는 인(仁)을 설파하며 평화를주창했던 공자(孔子)와, 싸움의 기술과 인간의 심리를 깊이 연구한 손무(孫武)가 함께 살았던 시기다.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대립되는 두 사상, 즉, 인간의 사랑과 전쟁을 학문적으로 드높은 경지에올려놓았던 위대한 두 인물이 동시대에 살았던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소설 <열국지>에서, 춘추시대 가장 치열했던 싸움은 오와 월의 전쟁이다. 국경을맞대고 있는 두 나라는 세대를 거쳐 싸웠으며,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많은 고사성어도 만들어 냈다. 두 나라 간 마지막 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경국지색 서시와, 그 시대를 살았던 영웅과 간신들 그리고우정과 배신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오월 회전(會戰)은, 오월이 아닌 초나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 좋다. 초나라는 춘추전국 시대 최고의 명장 오자서가 살던 나라다. 당시, 초나라는 국력이 팽창 하던 시기로 평왕이 다스리던 때다. 그런데, 이 평왕이 안하무인의 성격에 주색을 유난히 밝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 미건 태자와 진나라 무상 공주와의 혼인 과정에서, 간신 비무기와 공모하여 며느리가 될 무상공주를 중간에 가로채기도 했던 엽기적인군주였다.
평왕의 절대 신임을 얻은 비무기는 정적인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를 모함하여 죽인다. 평왕과 비무기는 당대의 명장 오자서의 복수가 두려워 그를 즉시 죽이려 군사를 보낸다. 오자서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간신히피하여 도망친다. 오자서는 대를 이어 나라에 충성한 자신의 가문을 풍비박산으로 만든 평왕과 비무기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죽이리라 다짐한다.
오자서가 급히 도망치는 중에 한 무리의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 일이 있었다. 뒤늦게 나타난 병사들의두목은 오랜 친구 신포서였다. 오자서는평왕에 의해 대대로 초에 충성을 바쳐온 자신의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혼자살아남아 도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 평왕과 비무기를죽이리라고 말한다. 자초지종을 들은 신포서는 부하들에게 포위를 풀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는 친구 오자서에게 다음에 만날 때는 둘은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말하며 헤어진다.
강대국 초나라 평왕의 영향권을 벗어나려는 오자서의 길고 험난한 도망은 소설 <열국지>의 드라마틱한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은 형극의 길이었다. 오자서의 송, 정, 진나라를 거친 탈출 의 긴 여정은 동오에 도착하며 드디어 끝이 난다.
오에 도착한 오자서는 오왕의 사촌 동생희광 공자를 만나게 된다. 당시, 오는 희광공자가 왕실의 적자였지만, 사촌 형에게 왕위를 빼앗긴 상태에 있었다. 희광은 왕을제거하고 왕권을 되찾고 싶다며 오자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자서는 희광에게연회를 열어 오왕을 초청케 한다. 그리고, 자신을 충실하게 따르는 전제를 요리사로변장시켜 농어 속에 명검 어장(漁腸)을숨기고 오왕에게 접근하여 그를 죽인다. 이렇게 왕위에 오른 이가 오왕 합려다.
오왕 합려의 측근이 된 오자서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는 병법 연구가 손무를 군사(軍師)로 모시기 위해 백방으로 찾았다. 드디어, 오자서의 부하들이 손무를 찾아 그를 오나라 데려오게 되었다. 손무가 온다는 말에 오왕 합려는 뜰 아래까지 내려와 그를맞이했다.
오자서는, 또, 초나라에서 역적으로 몰려삼족이 멸하게 된 극완 장군의 동생 백비가 도망쳐 온 것을 알게 된다. 동병상련을 느낀 오자서는 그에게 오왕 합려를 알현케해, 중군 태수 벼슬을 받도록하며 따뜻하게 이 고향 후배를 감싸 준다.
손자병법의 토대를 만들어 놓은 병법의대가(大家)이기도 한 손무의 지휘 아래 훈련을 받은 오군의 병사들은 강병으로 거듭났다. 초를 칠 기회를 기다리던 그때에, 오자서는 초의 평왕과 비무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소리 내어 울며 자신의 손으로 평왕과 비무기를 죽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군은 초를 향해 출병한다. 오랜 훈련으로 다져진 강력한 오군에게초나라 병사는 적수가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군사 손무는 초군의 전략을 손금 보듯꿰뚫어 보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진격한 오군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나라를 초토화시켜버렸다.
오자서는 원수 비무기의 시신을 난도질 했다. 그런데, 평왕의 무덤은 찾을 수가 없었다. 평왕은 살아생전 당대의 용장 오자서가 반드시 찾아올 것을 예견하며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평왕은 죽을 때도 오자서가 가장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시신을 선산(先山)인 서종산에 묻지 말고 성동에 있는 요대호 물 밑에 수장한 후, 인부는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죽이라고 유언 했다. 그러나, 오자서는 살아남은 유일한인부였던 노인을 만나 기어코 평왕의 시신을 찾아낸다. 그는 평왕의 눈을 후벼 파내고 구리 채찍으로 때려 시신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초나라를 점령한 오군의 난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왕 합려 스스로가 초왕의후궁들을 희롱했고, 백비를 포함한 장군들은 초의 신하들의 처와 첩들을 가로챘으며병사들도 약탈을 자행했다. 군사 손무는 친구 오자서의 잔인한 행동을 보고받고, 또, 오왕과 병사들의 만행을 지켜보며 통탄 한다. 그는 오자서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오나라는 언젠가 반드시 오늘의 이 대가를 치룰 것이오." 오자서는 깜짝 놀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