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傾國之色) [3]
월왕 구천이 호구산(虎丘山)에서 오왕 부차의 선왕 묘를 가꾸며 치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월나라에 머물고 있는 재상 문종은 바삐 움직였다. 그는 월의보물과 진귀한 특산품들을 모아 오왕 부차와 신하들에게 아낌없이 뿌렸다. 자연스럽게 구천에 대한 동정론도 서서히 자리를잡아갔다. 대부 범려가 구천의 시중을 들 라는 오왕의 배려도 이런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호구산에서 구천을 모시고 있던 어느 날, 범려는 오왕 부차가 병으로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이것이 하늘이 월나라에 준 기회라 생각했다. 범려는 왕 구천에 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부차가 병으로 누워있다고 합니다. 대왕께서는 부차에게 전에 의술을 익혔으니 집맥을 해보고 싶다고 연락하십시오. 그리고 대왕께서는 부차의 똥 맛을 봐야겠다고 말하고, 이를 반드시 실행하여야 합니다. 그 후 왕께서 곧 쾌차하실 거라고 말씀하십시오. 뒷일은 하늘의 뜻입니다."
죽어도 그런 일은 못한다던 구천도 살아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맥의 기회는 마련되었고, 범려의 지시대로 구천은 부차의 똥 맛을봐야겠다고 말했다. 처음 부차는 깜짝 놀라거절했으나 구천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를허락하게 된다. 손가락으로 맛을 본 구천은 이렇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2, 3일 내로 쾌차하실 것입니다."
우연인지 하늘이 도와서인지, 며칠 후 부차의 병은 거짓말처럼 나았다. 범려는 부차가"여자와 같은 인덕(人德)은 있어도 장부의기상(氣像)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파악 하고 있었다. 범려가 부차의 이 감성을 교묘히 파고 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정에서는 "이제 구천을 고국으로 보내야 한다" 라는 의견이 공공연하게 떠돌았고 오왕도 이를 받아 들이는 분위기였다.
뇌물의 힘은 이처럼 무섭다. 오의 신하들은 얼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적군의수장(首長)을 못 놓아 주어 안달이 난 것이다. 오자서를 비롯한 몇몇 신하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오히려 오왕 부차는 구천을 두둔하며 짜증을 냈다.
오자서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손무 원수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한번 그를 사무치게 했다. 손무에게는 돌아갈 고국이 있었지만오자서에게는 돌아갈 땅이 없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오자서의 운명적 비극이었다.
결국, 구천은 고국 윌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왕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문종은 만조백관들을 대동하고 강나루로 영접을 나왔다.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구천은 월나라 땅을 밟자, 얼굴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옆에 있는 왕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는 줄 알았던 우리 부부가 살아 돌아왔구려. 내 이제 천명을 깨달았으니 언젠 가는 오나라를 내 손으로 반드시 멸망 시키고야 말 것이오."
구천은 궁에 돌아오자마자 편전(便殿)에곰의 쓸개를 매달아 놓고, 그곳을 드나들 때마다 입으로 그 쓴맛을 빨며(嘗膽 상담: 곰의 쓸개를 빨다) "구천아, 너는 회계산의치욕을 잊었느냐!"라며 복수을 다졌다. 후세 사람들은 일찍이 아버지의 원수를갚으려고 장작 위에서 잠을 잔 부차의와신(臥薪)과, 곰의 쓸개를 빤 구천의 상담(嘗膽)을 갖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었다.
월나라를 굴복시키고 난 오왕 부차는 그때 부터 할 일이 없었다. 세월이 한가하니 그는 자연스럽게 서서히 주색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월나라에서 비취, 호박, 홍옥, 황갈포 같은 조공품이 쏟아졌다. 환락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던 부차는 고소대(姑蘇臺)에 별궁을 짓기로 결정하고 전국 의 유명한 목수들을 불러들인다.
당시 목재는 월나라의 것이 최상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오나라에서 목재를 요구해오자, 범려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심산유곡에서 베어 온 목재에 용봉(龍鳳)이라는 글자를 일일이 새겨 오나라에 진상했다.
범려는 조공사로 다녀온 유몽으로부터 오왕 부차가 조공품에 매우 흡족했으나, "미녀들이 없어 섭섭하다"라는 말을 했다는 보고를 받고 묘한 웃음을 지었다. 범려는 왕 구천으로 하여금 전국에 미녀 공출령(供出令)을 내리게 했다. 범려는 오를, 왕은 주색으로 신하들은 뇌물로 뿌리째부패한 나라로 만들어 버릴 작정이었다.
공출령으로 뽑힌 50명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절세미인들이었다. 그들 중에 특별히 훈련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춘추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 서시(西施)다.
문종은 이 50명의 미녀들과 함께 오왕 부차를 찾았다. 부차는 분향기 풍기는 미녀들에 둘러싸여 벌써 반은 정신이 나갔다. 범려는 문종에게 부차가 뼈도 못 추리게 만들라고 당부했다. 문종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께서 미인을 보시는 안목이 워낙 높으셔서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시라는 아이 하나만은 반드시 마음에 드시리라 자부하옵니다." 부차는 귀가 번쩍 뜨였다. "이 중에 서시라는 아이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 아이가 남다른 재주라도 있소?" "가무도 잘하고 서화에도 능하지만, 특히, 음률(音律)에는 따를 여인이 없사하옵니다."
서시를 한 번 찾아보라는 문종의 정중한제안에, 부차는 장난삼아 그러마고 나선 다. 그는 이미 왕의 체통도 잊어가고 있었다. 부차는 미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 펴 나가기 시작했다. 색향(色鄕)의 나라월나라에서 뽑혀온 절세미인들이라 모두가 어디 한 군데 빠지는 곳이 없다. 그런데 부차는 교태를 부리는 미녀들 중에 유독 얼굴을 찡그린 듯 도도한 모습을 보이는 한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유난스럽게아름답고 고상해 보였다.
부차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라 했다. 백옥 같이 희고 보드라운 손인데 엄지와 검지에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네가 서시구나."문종은 그 광경을 보며 크게 놀라는 체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앗! 대왕께서는 어찌 그 아이를 단번에알아 내시옵니까? 참으로 미인을 알아 보시는 대왕의 혜안에는 귀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사실, 문종이 부차에게 서시가 음률에 뛰어나다고 말한 것은, 현악기를 다루는 그녀의 엄지와 검지에 굳은살이 박인 것을 알려준 것과 같다.
<장자: 莊子>의 천운편(天運篇)에 "효빈(效顰)"이라는 새로운 문자가 등장하는데이 말이 태어난 배경이 아래와 같다.
서시는 본디 어부의 딸로 바닷가에서 가난하게 자란 여자다. 얼굴은 아름다웠지만어렸을 때부터 가슴앓이 병이 있어, 가슴에 손을 얹고 눈썹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때 서시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마을 여자들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눈썹을 찡그리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서시와 달리 못생긴 여자들이 찡그린 얼굴로 돌아다니니 그 모습들이 가관이었다. 마을 남자들은 그 꼴을 보지 않으려고 이사를 가고, 남아 있는 남자들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을 나다니지 않았다. 효빈(效顰)이라는 말은 이렇게 서시에서 유래했는데, 정리하면, "맥락도 모르고 함부로남을 흉내 낸다"라는 조롱 섞인 말이다.
고소대의 별궁이 완성되자 오왕 부차는, 수많은 궁녀들을 거느리고 가무와 주연으로 세월을 보냈다. 서시는 눈부신 그 미모 뿐만 아니라 가무가 만인지상(萬人之上) 인지라 부차의 총애를 언제나 독차지했다. 부차는 서시를 얼마나 아꼈던지, 그녀를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별궁 왕후"라는 칭호를 내려 왕후와 똑같은 예우를 받게 했다.
왕이 유락(遊樂)에 빠지면 신하들이 이를말리고 정사(政事)를 게을리하지 않게 해야 하지만, 이미, 부차는 간신들에 둘러싸여밖을 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실권을 잡고 있는 대부분의 신하들은 월의 뇌물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백비였다. 그는 입안의 혀처럼 부차의비위를 맞추고 맞장구치며 환락을 부추겼다. 사치에는 한계가 없는 법이니 그바람에죽어나는 것은 백성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