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024자·5분 남짓

딥시크(DeepSeek)와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

엊그제 설 인가했더니 정월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나이 들며 어젠가부터 명절 하나 보낼 때마다 이렇게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다.

옛날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명절이돌아오면 그동안 소원했던 친척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근황을 묻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종가(宗家)에서는 항상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예배가 끝나고 얼마 동안 덕담을 주고받다가는 슬그머니 두 패로 나누어진다. 나이 든 우리들과 젊은 세대인 아들과조카들이 따로 모이는 것이다.

올 설에도 어김없이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도 확연히 달랐다. 우리가 계엄이나 탄핵 같은 시중에 떠도는 정치 이야기가 주류였다면, 젊은아이들은 집이나 주식 같은 실물 경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번설에는 딥시크(DeepSeek)가 단연 젊은 세대의 토픽이었다.

확실히 이번 딥시크 사건은 세계 테크놀로지(Technology), 특히, AI 산업 분야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 왔다. 딥시크가 발표된 지난 1월 27일,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해온 엔비디아(Nvidia)의 주가가 17퍼센트나 급락하며 시가총액에서 6000억 달러가증발한 것을 보면, 그 충격이 얼마나 컷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AI 산업은 아마존(Amazon), 구글(Google), 메타(Meta)와 오픈 에이아이(Open AI) 같은 미국의 태크 대기업이 절대적 지배권을 갖고 선도해 왔다. 그런데, 미국의 이 독점적 위치가 이번 딥시크 사건으로 극적인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중국은 2013년 "Made In China 2025 (MIC 25)" 정책을 발표하고 그동안 엄청난자금과 정책지원을 해왔다. "MIC 25"는중국이 2025년에는 하이테크 10개 분야, 즉, AI, 로봇 산업(Robotics), 통신(Tele- communication), 항공우주 산업(Aero- space engineering) 등과 같은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서방 과학 기술에 도전하겠다는 MIC 25는 그동안 미국과 동맹 선진국들의 강력한견제를 받아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국은드론(Drone)과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확실한 미래 중추 산업으로 알려진 AI 분야에서 딥시크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과 서방의 대중국 첨단칩(Chip) 수출 통제와 같은 강도 높은 제재가운데서 일어난 이 사건은 중국의 회심의일격이라 할 수 있다. 많은 국제 정치 평론가들은 딥시크 사건을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에 비유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승전국으로일약 세계 최고 강대국의 위상에 올랐다. 경제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도 다른나라들을 압도한다고 알려지고 있었으며, 미국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해, 지구상에 미국을 대적할 나라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평온하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난데없이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이다.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다. 인공위성은 성공적으로발사되어 지구 궤도를 돌며 라디오 신호를 보냈다.

서방 진영이 농업 국가로만 알고 있던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히, 미국인들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언제든지 소련의 핵무기가 미국 본토를 향해 날라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훗날의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말한다.

미국은, 우주산업에서 소련에 밀릴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자, 서둘러, 이듬해 1958년 7월 29일 나사(NASA)를발족 시킨다. 스푸트니크 사건은 미국이 독일의 전범 과학자들을 우주개발에 적극적으로 합류 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 미국은 10년 내에 인간을 달에 착륙 시키겠다"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1969년 7월 20일, 드디어, 닐 암스트롱이아폴로 11호를 타고 달 착륙에 성공하게 된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우리가 왜 소련에게 과학기술이뒤졌는가?"라는 전제(前提) 아래 교육 문제부터 정부 정책에 이르기까지 심각한자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소련보다 우수한 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을뜯어고쳐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와 같이,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을 짧게정의하면 "어떤 분야에서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자만하고 있을 때, 외부의 강력한 도전으로 충격을 받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많은 평론가들이 딥시크 사건을 스푸트니크 쇼크에 비유한 것은 그만큼충격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첨단산업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쩌면, 현실을 받아들이며발빠르게 새롭고 창의적인 길을 찾는 이런진취성이 미국의 힘인지 모른다.

기술 패권을 놓고 숨 막히는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첨단 산업 분야에서 나름대로 선두 그룹에 있다고 자부하던 한국은 근래에 동력이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지난 2월 10-11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AI 정상회담이 열렸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인도 모디 총리, 미국 JD 반스부통령, 중국 덩 쉬이앙 부주석 그리고Open AI의 샘 알트만, Google의 순다르피차이를 비롯한 60여 개국의 인사들이모였다. "AI 행동 정상 회담(AI Action Su- mmit)"이라는 제목 아래 개최된 회담에서 , 불행하게도, 한국의 위상은 초라하기그지없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대표로 참석한 이번 이틀간의 회담에서 한국 AI 기술 관련 뉴스는 전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탄핵 정국이라는 변명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 전체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며칠 전 2월 18일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코리아해럴드에 기고한 영문 칼럼을 읽은 일이 있다. 칼럼은 내용을 다 읽지 않아도, 제목에 이미 김 교수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칼럼의 제목은 "Korea strolls as others spr- int in global tech race"이다. 이를 해석하면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경쟁국들은뛰고 있는데 한국은 한가롭게 걷고 있다" 정도 될 것 같다. 그는 지금 세계는 기술 전쟁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싶었는지 아래 문장으로 칼럼을 시작한다. "It all boils down to technology. (세계의) 모든 것은 테크놀로지로 요약 된다."

구미 선진국과 달리 중국의 딥시크 사건을 별일 아닌 지나가는 뉴스 정도로 여기고 있는 한국 정부와 언론 그리고 재계가 정말걱정스럽다. 중국은 지금 최고의 두뇌 집단 이 공대로 몰리고, 매년 수십만 명이 과학자나 개발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기술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미국을 이길 수 있다며 밤새워 일하고 있다. 비록, 현재 중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런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있는 중국의 잠재력은 상상하기어렵다.

우리는 중국의 딥시크(DeepSeek) 사건을 진정한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 ck)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과학기술 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전반적인 대대적 개혁을 추진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제도와 연구환경개선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과학자와 기술 개발자들에 대한 처우가 획기적으로달라져야 한다. 그럴 때에 장기적인 교육개혁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수 있다. 최상위인재들이 의대와 법대만 가겠다는 오늘날 이 한심한 우리 교육 환경으로는, 세계 첨단 기술을 이끌고 있는 미국, 중국과의 경쟁은불가능하다.

하루빨리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지금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민의 역량을 모아 기술강국 초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개혁을과감하게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