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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최후의 만찬은 예수그리스도가 수난을당하기 전날 밤 열두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다락방에서 가졌던 유월절 식사다. 이는 오늘날 성만찬(The Sacrament)의 기원이 되었다.

그날 밤 예수는 눈앞에 닥친 수난을 예견하고 떡을 떼주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그리고포도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피니라."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는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제목의 그림을 생각하면 곧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떠오른다. 그만큼 레오나르도의 작품은 인류에게 불후의명작이 되었다.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그라치아(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의 벽화다. 사람들은 피렌체 사람인 레오나르도가 왜 밀라노 성당의 벽화를 그렸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 연유는 대강 아래와 같다.

레오나르도가 살았던 당시 피렌체의 지배 자는 "메디치 가의 위대한 로렌초(Lorenzo the Magnificent de' Mddici)"라 불리었던 로렌초였다. 그는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예술가들과 학자들을 적극적으로지원하므로 피렌체가 명실공히 르네상스의중심이 되어 서구 문명의 꽃을 활짝 피게 했던 선구자적 인물이었다.

로렌초는 경쟁 관계에 있던 주변 국가에예술가들을 보내 긴장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폈다. 이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보티첼리(Botticelli)가 로마로, 베로키오(Verrocc- hio)가 베네치아로 갔다. 그즈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로렌초의 명을 받고 문화외교사절이 되어 밀라노로 가게 된 것이다.

금융업과 예술 학문이 발달한 피렌체와 달리 밀라노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밀라노의 인구는 125,000명으로 피렌체의 3배 정도였다. 이 도시는 군을 장악한스포르차 가문이 이백여 년 동안 지배하고 있었는데, 당시, 권력자는 루도비코 스포르차(Ludovico Sporza)였다. 피부색이검어 "무어(Moor)"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했던 그는, 권력을 위해서는 물불을가리지 않았던 잔인한 성격의 실용주의자였다. 그의 통치술은 마키아벨리 <군주론> 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질적인 문화였지만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의 환경에 잘 적응했다. 오히려 사교적인 그에게 정적(靜的)인 피렌체보다는 활발하고 부산한 밀라노가 더 마음에 들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그는 1482년30세가 되던 해 피렌체를 떠나 무려 17년동안이나 밀라노에 머물게 된다.

루도비코의 후원을 받으며 레오나르도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실력과 경력을 쌓아갔다. 레오나르도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다. 실제로 루도비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소개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많은 노트에는 군사 무기, 헬리콥터 비슷한 비행 물체, 인체구조, 악기(樂器)와 같은 방대한 스케치들이 있다. 그의 기하학적 도면들은 5백여 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고 과학적이다.

1494년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가족 묘지(Mausoleum) 건축을 시행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는 장소를 물색하던 중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아담한, 밀라노 중심에 위치한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아 성당으로 확정을 했다. 이 공사의 총책임자로 건축가인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가선정되었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레오나르도는 새로 신축되는 식당 북쪽 벽에 그려질 공사의 핵심 프로젝트인 벽화 "최후의 만찬"을 책임지게 된다.

밀라노 시민들은 이 역사적인 벽화를 그리는 레오나르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의 전기(傳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 son)은, 그때의 작업하는 레오나르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썼다.

"remain there brush in hand from sun- rise to sunset, forgeting to eat or dri- nk, painting continually 그는 해 뜰 무렵부터 손에 붓을 들고 (비계 위에 올라) 먹고 마시는 것도 잊은 체 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이런 모습도 볼 수 있었다. "He would remain in front of it for one or two hours and contemplate it in solitude. 그는 (작업 중인) 벽화 앞에 한두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며 작품의 방향을 생각하는 듯 외롭게 서 있었다."

자연과 사물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던 레오나르도는 인체의 구조에 대해서도집요하게 파고들며 관찰했다. 그는 광학을공부하며 빛의 굴절과 시각에 관해 많은연구를 했다.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의 이런 과학적 지식과 예술적 영감이 어우러져 빚어진 걸작이다. 해 질 무렵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의 표현, 예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완벽한 원근법은 이 작품이 왜 불멸의 명작인지를 말해 준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 걸려있는 최후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하며 성스럽고 엄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그림은 화가의 의도를파악하기 힘든 작품 중 하나다. 레오나르도 가 벽화를 통해서 말하려 한 것은 성스러움이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신약의 누가복음 14장 17-18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예수의 이 말은 식탁 앞에 앉아 있던 제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었다. 계속해서 누가복음 14장 19절은 이렇게이어진다. "그들이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정확히 이 누가복음 14장 19절을 표현한 작품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떡을 떼주고 포도주를 나누어 주기 직전의 상황이다. 주이시며 스승인 예수를 팔 사람이 우리 중에 있다는 예수의 말에 식탁은 순식간에 뒤숭숭한난상토론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벽화는 한가운데 예수를 중심으로 12명의 제자들이 3명씩 4그룹으로 나누어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수를 중심으로 맨 왼쪽 3명은 바톨로메오,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안드레다. 그다음 그룹은 유다, 베드로, 요한이다. 유다는 오른손에 은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들고 있어, 그가 바로 예수를 팔 사람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그룹은 도마, (대)야고보, 빌립보다. 도마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은, 훗날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고 창에찔리었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봤던 것을 표현한 것이다. 맨 오른쪽 3명은 마태, 다데오, 시몬이다. 12명의 제자들은 지금그리스도 배신에 대해 흥분하며 아우성 치는, 우리와 성정이 비슷한 보통 사람들의군상(群像)이다.

지난해 12월 3일 내란 사태가 일어난 후, 많은 국민들은 생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진행 상황을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내일(4월 4일)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를 한다고 한다. 이야기들이분분하지만 재판관 중에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리라 믿고 싶다.

탄핵 선고 일이 발표되자, 한 해외 매체는선고 결과를 놓고 도박사들이 베팅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쩌다 이런 조롱과 웃음거리가 되었는지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이렇게 국격을 짓밟아 놓고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윤석열은 이미 대통령으로서 자격과 권위를 상실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10개와도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와 코리아 브랜드의 뿌리가 바로 피 흘려 이룬 우리의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지구촌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대한민국의민주주의와 다이너미즘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위대한 자산을파괴하려 한 윤석열과 그 일당들은 반민족적이며 반역사적며 반지성적인 자해(自害) 집단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주인공은 오른손에 은화 주머니를 들고 있는 유다라고 볼 수도 있다. 헌법 재판관들 중에 개인적인 소신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라는 대의(大義)를 저버리는, 벽화 속의 유다와 같은 어리석은 배신자가 없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