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앙 소렐(Julien Sorel)의 비극 [1]
발자크와 함께 프랑스 근대 소설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는 스탕달(Stendhal)은 17 83년 프랑스 그르노빌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완고한 왕당파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그가 7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연성이 없는 아버지보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이며 의사인 외할아버지를 무척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스탕달은 외할아버지가 설립한 학교 에콜상트랑에서 공부하고, 파리의 이공계 대학에 진학했다. 스탕달은 학교 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학교를 자퇴 하고 군에 입대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군 장교가 된 그는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시대가 끝난 후, 이탈리아인들의 소박한 삶에 깊은 인상을 받은 스탕달은밀라노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그림과음악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라서, 스탕달의 문학은 밀라노에서 시작되었다고할 수 있다. 1821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상류 사회의 멋쟁이로 삶을 즐기며, <사랑에 대한 논문: a treatise on love>을 발표 하기도 했다. 파리로 돌아온 6년 후 1827년, 스탕달은 부유한 귀족 청년과 가난하지만 자긍심이 강한 처녀와의 사랑을 그린 첫 번째 소설 <아르망스: Armance>를 발표했다. 그리고, 뒤이어 1830년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을 발표하게 된다.
스탕달은 작가였지만 여행가이기도 했다. 마치 집시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고 유럽곳곳을 찾아다녔다. 특히, 군 시절 인연을맺은 이탈리아 사랑은 남달랐다. 그는 이탈리아 도시들의 건축, 조각, 그림과 같은예술에서 문학적 소재와 영감을 얻었다.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로마, 나폴리, 피렌체>라는 여행기를 남겼다. 훗날, 스탕달은 유언에 따라 자신의 묘비명을 "밀라노인 벨(스탕달의본명), 살았고, 썼고, 사랑했노라 "라고 쓰게 했다.
스탕달의 작품 중 <적과 흑>은 그의 대표적 역작(力作)이다. <적과 흑>은 한 시골 출신 청년의 상류사회에 대한 빗나간 욕망을 그린 장편소설로, 서양 고전문학의 주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도 중심 모티브는불륜이지만, <안나 카레니나>, <보바리 부인>, <채털리 부인>과 달리, 10살 연하의청년과 귀부인 간의 애증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제목 <적과 흑>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작품을 읽은 많은 평론가들이 스토리의 내용과 제목의 연관관계를 찾지 못해, 스탕달에게 "<적과 흑 >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라고 물었다. 스탕달은 끝내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적과 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소설 <적과 흑>은 프랑스 동부 작은 도시베르에르(Verrieres)의 풍경을 묘사하며시작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베르에르는두강(Doubs)이 흐르고 있다. 강 언덕에 붉은색 지붕과 하얀색 벽으로 지은 집들이옹기종기 모여있다. 그곳에 소렐(Sorel) 영감이 운영하는 작은 제재소가 자리 잡고 있다. 목수인 영감은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특히, 땅 욕심이 유별난 냉정한 인물이었다.
소렐 영감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제재소는 번성해 갔고 영감의 재산은 점점 늘어 갔다. 그런데, 두 형들과 달리셋째는 생활이 영 딴판이었다. 셋째 줄리앙은 방에 틀어박혀 책을 뒤적이며 공상에 빠져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아버지에게는 줄리앙은 게으르고 한심한, 앞날이막막한 아들로 보였다. 형들은 일하기 싫어하는 이런 동생이 미워, 가끔 주먹질까지 했다.
줄리앙이 이렇게 된 것은 계기가 있다. 그는 한 늙은 군인으로부터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다. 늙은 군인은나폴레옹은 비록 프랑스 변두리 코르시카섬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가슴속에 큰 야망을 품고, 주어진 운명에 정면으로맞서며 결국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서사(敍事)를 마치 옛 영웅담처럼 들려주었다. 군인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줄리앙은, 언젠가 자신도 출세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의 구박 속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했다. 그렇게 줄리앙에게 노병의 말은 평생의 삶의 좌표와 같은 마음속 새김글이 되었다.
베르에르의 시장은 레날(Renal)이라는사람이다. 철강업의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행정능력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시장이 오늘 강가에 있는 소렐 영감의 제재소를 찾아가고 있다. 시청 직원을 시켜 영감을 불러도 되는데, 직접 찾아가고 있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레날 시장은 그즈음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커가며 좋은 가정교사를들이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은 지역사회에서 신망이 두터운 교회의 셀랑(Chelan) 사제에게 이 일을부탁하게 된다. 셀랑 사제는 시장의 말을듣자마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에게 라틴어를 배우는 줄리앙이었다. 사제는 줄리앙에게 라틴어를 지도하기 시작하며, 곧바로 그가 어학에 천재적 두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렐 영감은 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다 줄리앙을 자기 아이들 가정교사로 모시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안이벙벙해진다. 그러나, 영감이 누구인가. 상황을 파악한 그는, 재빨리 자식 줄리앙으로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몇 차례 만나 구체적인조건들을 주고받았다. 결국, 소렐 영감은 시장이 제시한 금액 보다 더 많은 돈을받기로 하고 합의를 하게 된다.
줄리앙은 시장의 집으로 향했다. 저택 앞에 도착한 그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줄리앙의 앞에 한 귀부인이서 있었다. 그녀는 시장의 아내 레날 부인이었다. 줄리앙은 태어나서 한 번도 젊은 여인과 이렇게 가까이 서 있어 본 일이 없었다. 부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줄리앙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초라한 자신의모습과는 너무 다른 그녀의 우아한 자태에 줄리앙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I've come to be tutor here, madame. 부인, 저는 가정교사로 여기 왔습니다."
말을 마친 줄리앙은 극도로 당황한 나머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레날 부인은 갑자기 소녀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자신의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이 농민의 아들이 너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도무지 라틴어를 하는 선생님 같아 보이지 않았다.
"몇 살이에요?" "열아홉이 거의 다 됐습니다." "내 큰 애가 열한 살인데... 거의 친구네요."
분위기가 조금 풀리자 줄리앙은 용기 있게행동해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악수하며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정중히 입을 맞추었다. 레날 부인은 예기치 않은 줄리앙의 행동에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줄리앙을 거실로 인도했다.
레날 부인은 아직 어린애 같은 세 아들을가정교사에게 맡겨 강제적인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당시 프랑스 상류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가정교사가 들어온다는 것은 엄격한 교육이 시작된다는 것을의미했다. 그렇지만, 늘 그래왔듯이 그녀는 이번 아이들 교육 문제도 남편의 결정에따르기로 했다.
"아이들을 너무 엄하게 다루지 않았으면좋겠어요. 체벌도 안 했으면 하고요...." 레날 부인의 말에 줄리앙이 놀란 듯 대답했다. "체벌이라니요! 저는 가끔 형들에게 맞으며컸습니다. 그래서 체벌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안 좋은지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마십시오, 부인."
레날 시장이 서재에서 거실로 나왔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시장은 세 아이를 불렀다. 시장은 포켓 사이즈의 검은색 라틴어 신약성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맏아들인 아돌프에게 무작위로 성경을 펴 그 장(章)의 첫단어만 말하게 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던 줄리앙이 아돌프가 첫 단어를 말한 그 한페이지 전체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마치, 라틴인이 말하 듯 완벽한 발음과 함께 유창 하고 거침없이 이어지는 낭송이었다. 레날 시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부인을 바라보았다. 레날 부인도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베르에르 시에 줄리앙의 명성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레날 시장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줄리앙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장은 조용히 줄리앙을 불러 2년 계약을 제시했다. 그런데, 계약 조항이 일방적이었다. 단지 줄리앙의 의무만 있는 계약서였다. 줄리앙은 이렇게 말하며 냉정하게 거절한다.
"시장님, 이 계약서는 시장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저를 해고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의무만 있고, 시장님에게는 권리만 있는 불평등한 계약입니다." 줄리앙은 한 달 전 시골뜨기가 아니었다. 심리 싸움에서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를정확하게 판단하는 줄리앙의 영민함은, 레날 시장마저 마음속에 존경심을 갖게 만들었다.
줄리앙은 그의 명성 높아지며, 내면에숨어있던 교활함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레날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접근하기 어려운 그녀의 귀족적품위와 도도함이 정말 싫었다. 줄리앙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그녀에 대한 연모와미움이 자신의 출신의 열등감과 뒤범벅이 되어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레날 부인은 아름답고 부유한 여인이다. 그녀는 큰 재산을 갖고 있는 숙모의 유일한상속녀다. 그녀는 16살에 평소 존경하던 레날 시장과 별생각 없이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며 순탄한 상류층 부인으로살아오고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평범한 젊은 여자들이 꿈꿔보는 로맨틱한 사랑 같은 것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레날 부인은 가끔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꾀죄죄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던 줄리앙을 생각했다. 그런 그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녀는 한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빠른 속도로 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놀라움을 갖고 줄리앙을 지켜보고 있었다. 줄리앙은 점점세련되고 준수한 청년으로, 존경받는 라틴어 선생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줄리앙과 마주치면 가슴이 뛰는 자신을 발견하고 레날 부인은 깜짝 놀란다. 지금까지 어떤 남자에게서도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그녀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가슴속에 튄 불씨 하나가, 급기야, 거센 불길이 되어 그녀를 휘감으며 잠못 이루게 했다.
"Could I be in love with Julien? She asked herself at last. 내가 줄리앙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드디어 그녀는 스스로 자문을 했다."
남녀 사이의 감정은 이성적인 문제가 아니다. 레날 부인은 이미 줄리앙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정 표현은 점점 적극적이고 대담해졌다. 그런 레날 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할 줄리앙이 아니다. 그녀가 더 가까이 오려 할수록 그는 더냉담하게 행동했다. 한번은 레날 부인이 조그만 선물을 건네 주려 하자, 줄리앙이차갑게 거절하는 일까지 있었다. 줄리앙은 이렇게 여자의 섬세한 심리를 흔들어대는영악한 재주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사소한 신경전은 두 사람의 관계가 불륜으로 달려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세상이 모두 잠든 어느 날 밤, 줄리앙은 레날 부인의 방을 향해 조용히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는 방문을 열었다. 예기치 않게,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벽난로에 있는철야등이 방안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놀란 레날 부인이 침대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You Wretch! 이 나뿐 놈!"줄리앙은 순간 계획했던 일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며, 부인의 발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를 붙들었다. 그녀의 꾸짖는 말에 줄리앙은 눈물만 흘렸다. 하지만 이런부자연스럽고 가식적인 행동들은 모두 두 사람이 불길로 뛰어드는 서곡(序曲)이다. 그들은 곧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포옹과 함께 격정적 애무로 치닫는다.
폭풍처럼 지나간 정사 뒤에, 줄리앙은넘보지 못할 것 같던 귀부인을 정복하므로 자신의 미천한 신분에 대한 열등감에서해방되는 성취감을 느꼈다. 그리고 레날 부인의 마음속에는 죄의식과 후회,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아직 여진(餘震)처럼 남아있는 감각의 황홀감과, 모두가 흠모하는천재 청년을 소유했다는 정신적 기쁨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2]로 이어 가겠습니다-
김종호
▪︎위 글은 스탕달(Stendhal)의 <적과 흑: The Red and the Black) 영문본을 읽고의역(意譯)을 가미해 쓴 글이기 때문에, 번역본과 내용이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