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앙 소렐(Julien Sorel)의 비극 [3]
줄리앙에게 마치 갑작스런 사고처럼 찾아온 후작의 딸 마틸드와 함께한 하룻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마틸드는 무슨 일인지 저녁식사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후 줄리앙은거실에서 마틸드와 마주쳤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고 화난 표정이었다. 줄리앙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공격적인 모습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틸드의 차가운 표정은 이틀이 지나도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줄리앙의 존재를 아예 무시했다. 도서관에 그가 옆에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없는 사람처럼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줄리앙이 그날 밤 느꼈던 승리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히려, "혹시, 마틸드가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한번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그를 괴롭혀 왔던출신에 대한 열등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결국, "후작의 딸인 마틸드는 평민인 나와 같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을후회하고 있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 식사가 끝난 후당구실(Billiard Room)로 들어가는 마틸드를 줄리앙이 뒤따랐다. 그녀는 줄리앙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내뱉는화난 듯한 그녀의 말투에는 비웃음마저묻어있었다.
"당신이 나에게 무슨 권리라도 있다고생각하세요? 세상의 누구도 당신처럼 나에게 이처럼 무례하게 행동할 수 없어요."
줄리앙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날 밤 일이 당신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친다면, 제가 그 일은 평생의 비밀로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줄리앙은 더 이상 마틸드와 부딪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후작에게 사표를 제출 하고, 집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다음날 아침 곧바로 짐을 정리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줄리앙은 그동안 정들었던대저택 '호텔 드 라 몰(Hotel de La Mole)'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아침 시간인데 도서관에 마틸드가 서 있었다. 어김없이 그녀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줄리앙은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말씀이지요?"
마틸드는 갑자기 눈물까지 흘리며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I'm appalled at having given myself to the first man who came along." "재미 삼아 어울린 첫번 째 남자에게 몸을허락한 것이 소름끼쳐요."
"뭐, 재미 삼아 어울린 첫 번째 남자라고!"
줄리앙은 끓어오르는 분노로 이성을잃었다. 그는 벽 쪽으로 뛰어가 장식용으로 걸어 놓은 중세 시대의 칼을 칼집에서빼 들었다. 겉보기에는 늘 학구적이고차분한 모습이었지만, 줄리앙의 내면에는 이렇게 충동적이며 격정적인 성향이 숨어 있었다. 순간 줄리앙은 라 몰 후작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럴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칼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놀랍게도, 마틸드는 "하마터면 죽을 수도있었다."라는 생각과 함께 야릇하고 로맨틱한 행복감도 느꼈다. 그의 이런 거친 반발은 귀족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야만적인행동이었다.
떠나겠다는 줄리앙을 향해 후작이 물었다.
"어디로 가겠다는 건가?" "랑그도크(Languedoc)로 가려고 합니다."
라 몰 후작은 아무 연고도 없는 랑그도크에보낼 수 없다며 허락지 않았다. 후작의 말은 피라르 사제와의 관계 때문에도 줄리앙이 거절할 수가 없다. 줄리앙은 후작의 집을 떠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고단했지만, 앞일은 하나님께 맡기자는 방법 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작가 스탕달은 이 작품에서, 프랑스 최고의 귀족으로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평민 출신과 사랑에 빠지며 한편으로 그런 상황에 본능적으로 반발하는, 마틸드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녀에게 줄리앙은 사랑을 느끼게 하고 몸을 허락한 첫 남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줄리앙이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를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가족 식사를 마친 후 마틸드는 줄리앙에게 함께 정원을 걷자고 요청했다. 길을 걸으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줄리앙을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줄리앙의 옆에서 강력한 기쁨을 느끼며, 바로 오늘 아침 자기를 죽이려 칼을 움켜잡고 있던 그의 손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설은 줄리앙이 칼을 든 사건 이후에도, 그가 마틸드의 진정한 마음속 주인이 되어 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마틸드와 결혼할 것으로 알려진, 그녀의 아버지 라 몰 후작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크로이세누아 후작은 늘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밖에 드 보브이지, 코라소프 공작, 알티미라 백작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등장하며 파리 사교계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간다.
특히, 줄리앙과 염문설을 뿌린 페르바크부인(Madame de Fervaques)은, 늘마틸드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사교모임에서 페르바크 부인을 챙기는 줄리앙을 바라보며, 마틸드는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강렬한 질투심을 숨길 수 없었다. 줄리앙과 마틸드의 이런 긴장과 갈등 그리고 화해가반복되는 긴 줄다리기는 어느 날 끝이 난다.
She discovered she was pregnant and announced it delightly to Julien. 그녀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고 기뻐하며 이를 줄리앙에게 알렸다.
놀라는 줄리앙을 바라보며 미틸드가 말했다.
"저는 이제 당신의 영원한 아내예요."
며칠 후, 마틸드는 더 이상 이버지를 속일 이유가 없다며 편지를 쓰겠다고 말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줄리앙에게 "이것은 내 의무"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기쁨으로 반짝였다. 마드모아젤 드 라 몰, 마틸드는 이제 그녀의 무모한 만용의 공간으로 자신을 던지고 있었다.
마틸드는 아버지 라 몰 후작에게 긴 편지를 썼다. "저와 아버지 사이의 모든 사회적 관계는 이제 부서졌습니다. 다만, 부녀간이라는 인간적 관계만 남았습니다"라고시작되는 편지는 후작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래 내용들로 이어진다.
"저는 베르에르시 목수의 며느리가 되기로했습니다. 제가 공작부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줄리앙을 보고 사랑에 빠졌을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를 먼저사랑했고, 제가 먼저 유혹을 했습니다."마틸드의 편지에는 아래와 같은 글을 쓰며'사랑이 없는 공작부인보다는 사랑하는평민을 택하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Young Sorel is the only person I find amusing." "청년 소렐은 저를 기쁘게 해주는 유일한사람입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틸드는 이런 글을 남기며, 두 사람 사이에 아버지의강제적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의도를 보였다. "저는 줄리앙이 가자면 어디든지 따라갈것입니다. 그것은 제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 "He is the father of my child." "그는 제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의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시종이 급히 줄리앙을 찾아와, 후작이부른다고 말했다. 줄리앙은 이미 각오하고 있던 상태라 침착하게 일어나 그를 따라 나섰다. 시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작님이 화가 나서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조심하세요."
예상했던 대로, 후작은 미친 듯이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줄리앙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줄리앙이 "이 고상한 귀족도 원래 상스러운 시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말투는 이미 귀족의 품격은 사라지고, 거리 마부들의천박한 말과 다름없었다. 그는 줄리앙에게소리치다 혼잣말로 한탄을 했다. "뭐! 내 딸이 마담 소렐이 된다고! 아이고! 내 딸이 공작부인이 안된단 말이냐!" 후작은 다시 고개를 돌려 줄리앙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아, 마틸드가 좋아하는 것을 알았으면 빨리 이 집에서 나갔어야지!"
"후작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때랑그도크로 떠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했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네 이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저택을 떠나는 줄리앙의 등 뒤에서 후작의고함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격언이다. 마틸드가 일으킨 사고는 후작에게 경악할배신이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딸을 공작부인으로 만들어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 때문에 절망감은 엄청났고, 딸에 대한 배신감은 더 깊었다. 그러나, 후작은 이 일이 분노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현실을 서서히 인정해야 했다.
고심하던 후작은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마틸드와 줄리앙의 결혼을 허락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줄리앙의 지금 신분으로 결혼을 시킬 수는 없었다. 후작은 줄리앙에게 '라 베르네이(La Vernaye)'라는 새로운 성(姓)을 주고 기병대 대위로 임관 시키기로 결정했다. 줄리앙의 공식 이름이 '기병대장 줄리앙 소렐 베르네이(M. le Cheval- ier Julien Sorel La Vernaye)가 된 것이다. 드디어 줄리앙은 그렇게 원하던 중앙정치무대에서 꿈을 펼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결정 소식을 들은 마틸드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은 전통적 귀족의 관습을 이기고 자신의 의지에 따른 사랑을 쟁취했고, 아버지 라 몰 후작의 허락을 얻어냈다는 승리의 찬가였다.
결혼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예식은피라르 사제 교회에서 갖기로 했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대저택 '샤또 에귀옹(Chat- eau d'Aiguillon)'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줄리앙 부부에게 매년 36,000파운드의수입이 보장된 자산이 상속되기로 결정 되었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문제들이 정리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마틸드는 아버지에게 그의 너그러움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마틸드의 편지에 대해, 후작은 이해할 수 없는답장을 보내왔다. 그녀는 편지의 행간에서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I do not yet know what sort of per- son your Julien is, and You yourself know even less than I do." "나는 아직 줄리앙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런데 너는 나보다 그에 대해 더 모르는 것 같구나."
소설 <적과 흑> 35장의 소제목은 '폭풍(Storm)'이다. 주인공 줄리앙의 여정이피날레로 가기 위해 극적인 전환점을 만들며, 제목처럼 저 멀리 정중동에 있던 폭풍 이 두 사람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 오랫동안 자취를감추고 있던 레날 부인이 다시 등장한다. 그녀가 자신과 줄리앙의 부정을 고백하는 편지를 라 몰 후작에게 보낸 것이다.
마틸드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레날 부인의 편지를 줄리앙에게 내밀었다. 글이 적힌종이 표면은 레날 부인의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편지를 다 읽은 줄리앙은 마틸드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아버지를 원망치 않습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에게 사랑하는 딸을 주고 싶겠어요! 잘 있어요!"
그는 마틸드를 뒤로하고, 곧바로 4륜 역마 차에 몸을 싣고 베르에르로 향했다. 줄리앙이 베르에르에 도착한 때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주일 미사 시작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줄리앙은 총포사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두 자루의 권총을샀다. 그리고 천천히 교회를 향해 걸어갔다. 줄리앙은 주일 아침 이 시간이면 레날 부인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젊은 신부가 미사를 집도하고 있었다. 줄리앙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숄(shawl)로 얼굴을 가리었지만, 저만치 앞 쪽에 레날 부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첫 발을발사했다. 빗나갔다. 두 번째 방아쇠를당겼다. 레날 부인이 쓰러진다.
우왕좌왕하며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사제가 뛰어 다니고, 제복을 입은 경찰이달려오는 모습들이 마치 꿈결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줄리앙이 제정신이 돌아왔을때, 그는 자신이 감옥에 있다는 현실을 비로소 인식할 수 있었다. 갑자기 레날 부인을 죽였다는 죄의식이 슬픔이되어 그를 덮쳐왔다.
줄리앙은 레날 부인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 발은 그녀의 모자를뚫고 지나가고, 두 번째 탄환은 어깨를스쳤으나 가벼운 부상이라는 소식이었다. 줄리앙은 하나님을 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줄리앙은 어둡고 싸늘한 감옥에서, 그가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레날 부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레날 부인이 후작에게 편지를 쓴 것은, 교회 내 피라르 사제 세력을 무너뜨리려는 반대파 조직의 한 명인 부인의 고해 신부(Confessor) 협박때문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미 줄리앙의 아들을 갖게된 마틸드는 파리에서 베르에르로 와, 줄리앙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힘쓰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같이 줄리앙을 방문했다. 그날도 간수의호출에 깊은 잠에서 깬 줄리앙은, 마틸드가 온 것으로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런데, 레날 부인이 앞에 서 있었다.
"아- 부인, 제가 죽기 전에 당신을 보는군요! 이게 꿈은 아니지요?"
줄리앙은 레날 부인의 발아래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그녀도 슬픔에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줄리앙이 일어서자, 레날 부인이 그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눈물로 뒤범벅된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언제나 정답게 보이던 산,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두강, 꾀죄죄한모습의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청년이 시장의 저택 문을 두드렸을 때 나타난 눈이시리게 아름다운 귀부인, 재미있어 깔깔거리던 부인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눈물을흘렸던... 잊고 있던 기억들이 줄리앙의추억의 파노라마를 이룬다.
레날 부인은 지금 옥바라지를 하고 있는 여인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스탕달의 작품 <적과 흑>을 대표하는 문장이다.
"She's my wife, but she isn't my be- loved." "그녀는 제 아내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제연인은 아닙니다."
마틸드는 귀족의 품위를 끝까지 지켰다. 그녀는 줄리앙의 과거를 묻지 않고, 선택한 사랑에 대해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한다. 레날 부인에 대해 여자로서 숙명적인 질투심을 느꼈지만, 차분한 이성으로 이를 억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레날 부인과 고향 친구 푸케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줄리앙에게 정신적 의지와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려 온 힘을 다했다.
인간은 신이 예비한 운명을 비켜 갈 수 없다. 마틸드가 매수한 주교가 배신하며, 줄리앙의 사형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 줄리앙은 비로소 음습 하고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고 있는 교외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오랜 만에 깊이 들이켜 보는 신선한 공기가 감미롭기만하다. 그는 천천히 형장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줄리앙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줄리앙은 죽기 전 마틸드에게 재혼을권유했고, 레날 부인에게는 스스로 목숨을끊지 말 것을 당부했다. 소설은 레날 부인이 줄리앙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줄리앙이 죽은 지 삼일 째 되는 날, 레날 부인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죽었다. 그녀의 죽음이 작품 <적과 흑>의데누망(Denouement), 대단원을 만들며 비극은 막을 내린다.
가끔 주위의 친구나 지인들이 프랑스의시골은 어느 때 여행해야 좋은지를 묻는 일이 있다. 여행지는 나름대로 때마다 멋이 있고 정취가 있다. 마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언제 산을 찾아도 좋듯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행객들이 모두 떠난 늦가을의 프랑스 시골 포도밭길을걸어보는 것도 낭만이 있다. 사실, 포도농사가 다 끝난 농촌 풍경을 사랑해 찾아가는 여행객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따금농로를 따라 트랙터가 지나가고, 포도나무잎들이 단풍으로 물들어가며, 꿩들이 푸드득 날아가는 이국의 시골길은 아름답다.
감옥에서 나와 형장으로 걸어가던 줄리앙의 감정을 소설은 이렇게 표현했다. "오랜 항해 끝에 육지로 돌아와 땅을 밟아 보는 느낌이었다." 줄리앙은 그때까지 하늘이 푸르고, 햇빛이 눈부시게 찬란하고, 들이 마시는 공기가 그렇게 달콤한지 모르고 살았다. 우리는 소설의 마지막부분의 이 구절을 읽으며, 작가 스탕달이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작품 <적과 흑>을 읽고, 샤또(Chateau)에서 술이 익어가는 프랑스의 시골 포도밭길을 걸어가며, 줄리앙이잃어버렸던 푸른 하늘과 찬란한 햇빛, 신선한 공기를 느껴보기 바란다. 그리고 나도 혹시 신기루와 같은 허상을 쫓느라 내 곁에 있는 귀중한 것들을 잊고 살지 않았나 돌아 보는 사색의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