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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5자·7분 남짓·불멸의 제왕학(帝王學) 키루스(Cyrus)

불멸의 제왕학(帝王學) 키루스(Cyrus) [1]

청소년 시절에 읽는 위인전은 교육적으로큰 영향력이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책 속에 담겨 있는 위인들의 지혜, 용기, 철학 등은 그들의 정신적 성장 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다. 훌륭한 선인들의 가르침은 성년이 되어서도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 주고 길라잡이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인은 민족과 지역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 대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숭고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언급된다. 우리의 경우도 이순신, 세종대왕, 김구, 안중근 같은 선인들을 존경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중국과 유교 문화를 공유한 탓인지 공자, 맹자, 유비와 같은 인물들을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우리와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는 서구인들은 어떤위인들을 존경할까?"라는 질문이다. 서양사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 알렉산드로스, 시이저, 나폴레옹 같은 용맹스러운 정복자들이 있는가 하면 워싱턴, 링컨, 처칠 같은 탁월한 정치인들이 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 상류층 사회에서, 자식들의리더십 교육을 위한 역사적 모델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위인이 의외의 인물이다. 더군다나 그는 유럽인이 아니다. 그가 바로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BC590년경-BC530) 대왕이다. 우리는 대부분 키루스를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성경의 구약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바빌론 유수(Babylon 幽囚)는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그가 진노하시어 바빌론 제국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파괴케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끌려가 칠 십 년 동안 종살이 한 유대 역사를 일컫는 말이다. 바빌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짓밟히고 끌려간 불행한 역사, 바빌론유수는 구약의 에레미야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바빌론은 새롭게 일어선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제국의 창업자 키루스는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토록 한 관용을 베풀었다. 에레미야서는,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끌고 가 노예로 부린 것도, 그 바빌론이 페르시아에 망한 것도 다 하나님의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유대민족에게 놀라운 관용을 베풀고, 탁월한 지도력을 갖고 있었다는 키루스의 삶을 추적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우선2500년이 넘는 고대 사회의 인물이라 관련기록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비록 구약에 언급되고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수동적 인물로만 묘사되어 있어, 성서를 통해서는 그의 인격이나 구체적 치적에 대해서 알기가 어렵다.

다행히 우리는 키루스의 삶을 따라가 볼 수 있는 몇 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 역사의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BC484-BC 425)의 <역사: HISTORIES APODEXIS> 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BC430-BC355)이 쓴 <페르시아 원정기: ANABASIS>와 <키루스의 교육: CYRO- PAEDIA> 등이 있다.

먼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키루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기원전 600년 경 바빌론 제국이 서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을 때, 지금의 이란 북부지역에서 스퀴타이족을 정벌한 메디아왕국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당시 메디아는, 스퀴타이족을 제압한 왕퀴악사레스가 죽고 그의 아들 아스튀아게스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에게는 만다네라는 딸이 있었다. 어느 날 아스튀아게스가 꿈을 꾸는데, 딸 만다네가 엄청난 양의오줌을 누어 메디아의 도시가 물에 잠기고온 아시아가 범람을 했다. 왕은 꿈자리가뒤숭숭하여 마고스(메디아의 사제 관직)를 불러 해몽을 요청했다. 마고스의 대답이충격적이었다.

"왕이시여, 장차 공주 만다네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메디아를 멸망시킬 것 입니다."

아스튀아게스는 딸의 혼기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은 더 깊어갔다. 고심하던 그는만다네의 신랑감을 메디아가 아닌 페르시아에서 찾기로 했다. 당시 페르시아는 아직 나라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채 메디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왕에게 자신이 다스리는 메디아의 귀족 가문 보다는 약소민인 페르시아 사람이 훨씬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신랑으로 간택된 자는 페르시아의 지도자캄뷔세스였다. 만다네는 결혼하여 페르시아로 떠났다. 만다네가 시집간 첫해에 아스튀아게스는, 또, 딸에 관한 꿈을 꿨다. 이번에는 딸의 생식기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가자라나더니 온 아시아를 뒤덮는 것이 아닌가. 꿈의 해몽은 역시 전과 동일했다. 얼마 후, 아스튀아게스는 딸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왕은 외손자가 태어나면 곧바로죽이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딸에게 메디아에 와서 아이를 낳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만다네가 아버지의 궁에 와서 달이 차고사내아이를 낳았으니 그가 바로 키루스다.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바빌론으로부터유대민족을 구해줄 왕을 예언한지 200여 년 후에 일어난 일이다. 이사야서 45장1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딸 만다네가 아들을 낳자, 왕 아스튀아게스는 자신의 친척이며 충실한 신하인 하르파고스를 불렀다. 왕은 그에게 그동안 일 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외손자를 극비리에 죽이라는 엄명을 내렸다. 하르파고스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옮겨온아이는 왕의 외손자이기도 하지만 그의친척이기도 했다. 그는 절대 자기 손으로 아이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밤새 뒤척이며 고심하던 하르파고스는 문득 한 노예를 떠올렸다. 그는 숲에서 소 를 키우는 마트라다테스를 불렀다. 하르파고스는 소치기에게 왕의 명령이라며, 아이를 들짐승이 득실대는 숲속에 버리라고 말했다. 마트라다테스는 아이를 안고 집으로 왔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소치기의 아내가해산할 때였는데, 그녀는 남자아이를 사산(死産)하였다.

퀴노라 불리는 소치기 마트라다테스 아내는 황금 장신구를 차고 수놓은 옷을 입고 있는 아이를 보고 금방 높은 귀족의 자식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소치기에 매달리며 말했다.

"이 아이를 죽여서는 안됩니다. 내가 죽은사내아이를 낳은 것은 신의 뜻입니다. 이 아이를 우리 자식으로 알고 키워야 합니다."

소치기는 아내의 말에 틀린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들을 바꿔치기 했다. 죽은 자신의 아이를 상자에 넣어 숲속에 버렸다. 그리고 하르파고스의 부하들에게 버려진 아이를 보여주며 일을 마무리 했다.

키루스는 그렇게 소치기의 아들이 되어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키루스가 열 살이 되던 해에 그의 신분이 밝혀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키루스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놀이를 하는데, 활달하고 통솔력이 뛰어난 그를 아이들이 왕으로 뽑았다. 놀고 있던 과정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아이들 중에 아르템바레스라는 메디아 명문 귀족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키루스의 명령을 거부하며 반항을 한 것이다. 키루스는 그를거칠게 다루며 매질을 했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의 큰 싸움으로번지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노예의 자식이 귀족의 자제에게 매질을 한 이 사건은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왕이 개입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아스튀아게스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10년 만에 외손자와 만나게 된다. 그는 소치기의 아들을 보자, 본능적으로 10년 전 일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소년의 얼굴 표정이 자기와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왕은 즉각 소치기 마트라다테스를 개인적으로 심문하기 위해 불렀다. 끌려온 소치기는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모든 사실을 왕 앞에 이실직고했다. 난감한 왕은 마고스 들을 소집해 의견을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이러했다.

"전하, 소년은 동네 아이들에 의해 왕으로뽑혔기 때문에 전하의 꿈은 이미 효력을상실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애는 두 번씩이나 왕이 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따라서, 이제 아이를 죽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아스튀아게스는 벌써 의젓하게 커버린외손자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몹시 기뻐했다. 그는 소치기 마트라다테스를 조건 없이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메디아 왕아스튀아게스의 성정(性情)에는 잔인한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왕의 명령을 무겁게 여기지 않고 대충 처리하려 했던신하 하르파고스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왕은 하르파고스의 아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죽였다. 그리고 그의 살점을 삶아요리를 했다. 왕은 잔치를 벌이고 하르파고스를 초청해 양고기와 함께 내놓았다. "음식 맛이 어떠냐"라는 왕의 물음에 하르파고스는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시중드는 자들에게 바구니 하나를 하르파고스 옆에 놓게 하고 이를열게 했다.

바구니 안에는 아들의 머리와 손발이 있었다. 하르파고스는 직감적으로 소란을 일으키면 목숨이 날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왕의 결정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하르파고스가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간 것은, "아들 몸의일부라도 수습하여 묻어주기 위함이었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키루스가 외할아버지 아스튀아게스와 함께 살게 된 시간도 꽤 지났다. 어느 날, 왕은 다시 마고스들을 불렀다. 그는 "소년을 친 부모가 있는 페르시아로 보내도괜찮은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마고스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이제 전하의 꿈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었으니 안심하옵소서. 그러니 이제 그 소년을 페르시아에 있는 그의 양친에게보내소서."

그 말을 듣고 아스튀아게스는 기뻐하며 키루스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애야, 이루어지지도 않을 한낱 꿈 때문에 내가 네게 못할 짓을 했구나. 하지만 운명 이 너를 구했구나. 이제 너는 즐거운 마음으로 페르시아로 가거라."

키루스가 외갓집 메디아를 떠나는 장면을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특별하게묘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에서는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메디아를 떠나는 키루스는 외할아버지에게 한 가지 소원을 말했다. 그것은 자기가 메디아 궁에서 쓰던 모든 물건들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왕의 허락을 얻은 키루스는, 메디아를 떠나는 날 친구들을 다 모이게 한 후, 자기의물건들을 모두 나누어 주고 빈 몸으로 페르시아로 향했다. 친구들 중에는 키루스로부터 받은 물건이 너무 값진 것이어서 왕에게 다시 보고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것은 소년 키루스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첫 번째 메시지였다.

그렇게 키루스는 아버지 캄비세스와 어머니 만다네가 있는 페르시아로 왔다. 그때 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키루스의 부모는 놀라고 어리둥절해 하였다. 그들은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에 크게 기뻐했다. 키루스의 부모는 다시 얻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너를 살려 키워 준 소치기 부부, 특히, 퀴노의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된 다."

퀴노는 '암캐'라는 뜻을 갖고 있는 그리스어 케이언(Kyon)에서 유래한 말이다. 페르시아에서는 "키루스가 신의 섭리에 따라암캐의 젖을 먹으며 길러졌다"라는 소문이떠돌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치기의 부인, 노예 퀴노는 페르시아 건국의 어머니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많은 신화학자들은 훗날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와 레무스가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전설은 이 이야기에서 차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Part [2]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