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제왕학(帝王學) 키루스(Cyrus) [2]
페르시아가 아직 주변의 강대국과 비교할국력은 아니었지만, 크세노폰은 그의 저서 <키루스의 교육>에서 키루스의 아버지 캄뷔세스를 페르시아의 왕이라 불렀다.
캄뷔세스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아들 키루스에게 한낱 노예에 지나지 않는 소치기 아내 퀴노의 은혜를 평생 명심하라고 가르치는 것만 봐도 그의 인간 됨을 짐작할 수 있다. 키루스는 서아시아의 위대한정복자로 대업을 시작하기 전, 그런 아버지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게 된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아버지 캄뷔세스의 가르침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교육은 철학적이거나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평범함을 중시하고,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어 더 심오하다. 키루스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의 개략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자.
먼저 캄뷔세스는 키루스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캄뷔세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신(神), 부모, 국가, 친구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게을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분수를 모르는 욕심 은 자칫 화를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몹시 원하던 부를 얻었을 때 오히려 그것 때문에멸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키루스에게 배우기를 멈추지 말 것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진정으로 현명해지는 것보다 부하들을 복종 시키는 지름길은 없다.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아는 채 하지 마라. 너는 자칫 사기꾼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니, 명백히 네가 알 때까지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마라. 그리고 배운 것 위에 스스로 네 전략을 발명해 내야 한다. 마치 음악가가 이미 배웠던 작품만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작곡 하는 것처럼 말이다."
캄비세스는 키루스에게 미식(美食)을 하지 말라고 일렀다. 대장은 부하들과 같은 것을 먹어야 한다. 가끔 중대장이나 소대장을 막사로 불러 함께 같은 음식을 먹으라고 말했다. 그렇게 배운 키루스는 훗날 부하장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잠과 어리석음이 오지 않을 만큼의 고기와음료만 먹어야 합니다. 페르시아인이라면특정한 음식에 매료되거나 욕심 어린 식탐을 보여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 키루스에게 건강을 잘 지키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외모에 신경을 써항상 단정한 모습을 보이라고 가르쳤다. 적당히 먹고, 먹은 것은 반드시 운동을 해소화를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외모에 신경을 쓰라는 이야기는, 사치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항상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부하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가르침이다.
위의 내용은 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이야기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는 리더가 되어서실질적으로 현장으로 나가, 그가 해야 할일과 덕목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끊임없이 인재를 찾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곁에 뛰어난 참모들을 두고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전략을 만든다면그 결과는 좋을 수밖에 없다. 훗날 키루스는 기병을 양성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말을 구입할 때 조국산인지 외국산인지 가리기에 앞서 가장 훌륭한 말을 골라야 한다." "페르시아 말이 최고"라는 선입견을 버리라는 명령이다. 이는 키루스가 사람을 쓸 때, 사사로운 인연보다 능력을 중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둘째, 부하들에게 희망(비전)을 주어야 한다. 군사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열정을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면, 능력 있는부하들은 결코 그 리더와 함께 갈 수 없다. 그러나 부하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때, 지도자는 허황된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부하들과 비전을 공유하면서, 지도자는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실체적인 길을 찾아진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캄뷔세스는 아들 키루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냥개를 자주 속이면, 정작 야수가 나타나 신호할 때복종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들아, 너는 네가 완전히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삼가야 된다."
셋째, 친구와 부하들에게 무관심하지 마라. 캄뷔세스는 "친구에게 경의를 보여야 한다."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지도자들은 자칫 세월이 가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무관심해질 수 있다. 역사 속에는, 목표했던 것을 이루고 환경이 안정되면, 함께 고생했던동료들의 노고를 잊고 자신의 뛰어남만을자랑하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수도 없이 많다. 승리의 뒤에는, 반드시 참모와 부하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공(功)을 그들에게 돌리며 이를 오래도록 잊지 밀아야 된다.
캄뷔세스는 참모를 부를 때는 반드시 이름을 불러 그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들 키루스에게부하들의 건강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렇게 교육했다. "아들아, 너는 옷이찢어지면 수선하는 사람이 있듯이 병사들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항상 데리고다녀야 한다."
넷째,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한다. 캄뷔세스는 "지도자는 자기 탐욕을 추구하는 사람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라고 충고했다. 전투는 병사들의 육체적 힘이 아니라 정신으로 결정된다. 그들은 자신을 이끄는 지도자가 갖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관대한사람일 때, 기꺼이 고난을 함께하고 목숨을바친다. 그런 가르침 때문인지, 키루스는 결코 자신을 위해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는 늘 용감한 자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며 기뻐했다.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키루스는 페르시아의 탁월한 지도자로성장해 갔다. 그는 나이가 들며 말수가 적어 지고, 목소리는 점점 가라앉으며 진중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의 두드러진 지도력과 뛰어난 인품은 온 페르시아로 퍼져나갔다. 자연스럽게 키루스의 주위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기원전 5-6세기 경 서아시아는 3대 강국이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의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의 리디아, 이란고원 서북부 지역의 메디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갈데아(바빌론 제국) 이다. 여기에 젊고 유능한 지도자를 얻은 페르시아가 새로운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 하고 있었다.
키루스가 본격적으로 정복 사업에 나설 때, 그의 앞에는 커다란 산이 하나 버티고 있었다. 바로 페르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외할아버지 아스튀아게스의 나라 메디아였다. 그즈음 페르시아의 새 지도자 키루스에 대한 소문은 메디아까지 퍼져 있었다.
어느 날, 키루스에게 메디아의 하르파고스로부터 비밀 편지가 전해 왔다. 편지는 놀랍게도 "반란을 일으켜 메디아로 들어오면 자기를 따르는 신하들과 함께 키루스측에합류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헤로도토스의<역사>는 "하르파고스가 반란의 명분을아스튀아게스의 폭정이라 주장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아들을 삶아 죽인 원한이 자리잡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장고를 거듭하던 키루스는 드디어 마상(馬上)에 올랐다. 그는 위대한 페르시아를건설하기 위해서는 메디아 정벌은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것은 키루스의 숙명이었다. 외손자 키루스가 메디아를 향해 진격해 온다는 보고를 받은 아스튀아게스는 군 동원령을 내리고, 하르파고스를총사령관으로 지명했다. <역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스튀아게스는 자기가 한짓은 까맣게 잊고, 우둔하게도 하르파고스를사령관에 임명했다."
메디아의 불행은 그뿐만 아니었다. 어린 시절 메디아에서 함께 놀던 많은 키루스의벗들이 지금은 메디아 군 지휘관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키루스의 뛰어난 지도력과관대한 인품을 기억하고 있었다. 옛 친구들 의 마음속에는 지금도 키루스는 뚜렷한지도자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키루스에게 칼을 겨눌 수 없다고 말했다.
페르시아의 키루스 군은 파죽지세로 메디아의 수도 엑바타나를 향해 진격해 왔다. 사령관 하르파고스는 페르시아 군에 투항해 버리고, 주요 지휘관들이 키루스군과전투를 거부하며 메디아 군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서아시아의 강자메디아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BC 550년 페르시아 제국이 탄생하며 키루스가 왕위에 오른다.
메디아의 통치권을 인수한 키루스는 뛰어난정치력을 보여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키루스는 아스튀아게스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자기 곁에 붙들어두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하르파고스의 자질을 알아본 키루스는 그를 측근으로 등용하여 많은 전투에서혁혁한 공을 세우게 한다. 키루스에게 투항한 메디아인들은 "신이 내려준 사람 키루스"라고 말하며 결코 그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키루스가 메디아를 정복하자 리디아, 메디아, 갈데아가 균형을 이루며 지배하던서아시아의 세력 판도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방이나 다름없던 메디아가 사라지고, 페르시아라는 신흥 강국이 등장 하자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페르시아가 더 성장 하기 전에 싹을 잘라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당시 리디아가 자리 잡고 있던 소아시아는 그리스 문화권이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 크로이소스는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아보기로 했다. 델포이를 다녀온 사신의 신탁은이러했다. "너 자신을 알라, 크로이소스여! 그러면 그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크로이소스는 이 신탁을 "자신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리디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싸움은, 팽팽한 접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 교외 평원에서 양국은 마지막 대 결전을 벌이게 된다. 리디아는 강력한기병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군은 어떻게든 그 기병대를 격파해야 했다. 이 때 키루스는 말이 낙타를 무서워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즉시 낙타 부대를 조직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리디아의 기병대가 진격해 오자 페르시아 낙타 부대가 나타났다. 리디아 기병대는 말들이 겁을 먹고 놀라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페르시아 보병이진격하며, 리디아 기병대는 섬멸되고 말았다. 싸움은 페르시아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키루스의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용은 리디아와의 전쟁 승리 후에도 엿볼 수 있었다. 전쟁에 패한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왕의 품위를 잃지 않았으며, 너무나 의연하고당당했다. 키루스는 갑자기 그가 존경스러웠다. 그는 사형 집행을 멈추게 하고, 크로이소스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경을 표했다. 키루스는 그에게 귀족의 지위를 주고 극진히 대우 했다. 크로이소스도 키루스를 진정한 왕으로모시며 말동무가 되어주고 조언을 했다.
리디아를 정복한 키루스는 한동안 크고 작은 반란들을 제압하며, 내부의 권력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제국의 권력 기반을 안정시킨 후, 드디어 키루스는 눈을 들어 갈데아제국(바빌론 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데아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오랜문명 위에 기반한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그러나 풍요로움이 지속되며 지배층은 점점 부패해지고 왕권은 크게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당시 제국은 귀족과 신관(神官),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혼란이 극에 달 했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의 페르시아 대군은갈데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을 포위했다. 갈데아 사람들은 이미 키루스와 페르시아 군의 용맹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배신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며, 항복하면 늘 관용을베푼다고 알려진 영웅이었다. 키루스는갈데아 백성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항복하면 목숨을 구하고 여러분은 통치자 가 바뀐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을 것이오. 그러나 무기를 들거나 도망치는 자는 한 사람도 살려주지 않을 것이오."
바빌론의 귀족, 신관, 군대는 이미 키루스의 기상(氣像) 앞에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바빌론 성의 문이 활짝 열렸다. 페르시아 군이 성안으로 들어서자갈데아 백성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녹색 나뭇가지를 흔들며 그들을 맞이했다.
약속대로 키루스는 존중과 관용 정책을시행하므로 정복지 백성들에게 존경받는국왕이 되었다. 그는 또 "나는 모든 포로를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이다."라는 약속을 지켰다.
키루스가 바빌론을 정복하며, 포로로 잡혀 왔던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키루스의 바빌론 정복을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사야 45장 1절)"라는 언약을 이루신 것이라 해석한다. 그리고 이 언약을 위해 쓰임 받은 키루스는 성경에'하나님의 목자(牧者)'라고 기록되었다.
키루스가 죽고 200년의 세월이 지난 기원전 330년, 한 무리의 군대가 서아시아무르가브 평원을 지나 풀바르 강 유역의삼림 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군대를 이끌고 있는 지휘관은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정복자 청년 알렉산드로스였다. 군인들은 관목숲에서 잡초로 뒤덮인 한 건물을 발견했다. 묘한 궁금증을 느낀 알렉산드로스는 건물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묘탑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묘실 안으로 들어갔다.
묘실 안에는 알 수 없는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알렉산드로스 앞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 관 하나와 술잔이 놓여 있었다. 관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세상 사람들아! 내가 바로 키루스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세계의 왕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숙이며 묘실의주인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했다. 그는 비록정복자로 페르시아에 왔지만, 키루스를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고 있었다. 이렇게 고대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영웅은풀바르 강 유역에서 산자와 죽은자로 만났다.
김종호
▪︎위 글은 아래 책들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 ㆍ<역사> 헤로도토스 지음/천병희 옮김ㆍ<페르시아 원정기>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ㆍ<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 지음/이동수옮김ㆍ<역사를 결정한 대정복> 베이징대륙교문화미디어/양성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