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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향 테바이 (Thebes) [1]

여행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아는 것만큼보인다"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물론, 여행이 꼭 무슨 지식이나 교양을 충족시키려 가는 것 만은 아닐 것이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감상하러 가는 사람도 있고, 낯선 이국의 거리를 걸어보고 싶어 비행기를타는 사람들도 많다.

여행객 중에는 읽었던 책 속에 묘사된 특정한 지역을 찾아가는 이도 있으며, 영화의 배경 지역이나 알고 있는 예술품을 직접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표현은, 그런 목적을 갖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꼭 들려야 할 곳을 놓친 아쉬움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리스의 테바이는 그런 곳이다. 테바이 근방을 여행할 때 시간을 갖고 둘러봐야 했는데 스치듯 지나 쳐 버린 것이 지금도 많이 아쉽다.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라 불리는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도시 국가들 중 3대 강국을 꼽으라면, 역시, 아테네, 스파르타, 테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화, 예술 그리고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아테네와 전사의 나라로 드높은 기상을 보였던 스파르타에 비해, 테바이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유산이 없다.

아테네를 여행할 때, 여행객들이 테바이를방문하겠다면 사람들은 "테바이를 뭐하러가느냐?"라고 묻는다. 그들의 말에는 볼 것이 없다는 뜻 외에 묘한 뉘앙스가 숨어 있다. 테바이가 별로 유쾌한 고장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화의 세계로 돌아가 보면 정말 그렇다. 테바이는 오이디푸스, 세멜레, 니오베 같은신화들의 배경 도시인데, 유난히 잔혹하고 가슴을 애리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니 아테네 사람들의 속마음을 조금 더노골적으로 표현해 보면 "그런 재수 없는 곳에 뭐하러 가느냐"라는 뜻이 숨어 있는듯하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생애에 관한 책을 읽은 일이 있다. 헤겔은 감수성이 예민한소년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큰 슬픔을 겪으며 고독 속에 묻혀 자신과 힘겹게 싸워야 했다. 13세 때 어머니를 잃고, 14살 때는 너무나 좋아하고 의지했던 레플러선생을 잃었다. 그런 아픔에서 벗어나려는몸부림이었는지, 소년 헤겔은 그리스 로마 고전에 묻혀 살았다. 그는 특히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여주인공 격인 오이디푸스의 맏딸 안티고네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우리는 흔히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를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라 부른다. 그런데 굳이 세 사람의 비극들중 꼭 읽어야 할 작품을 꼽으라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3부작'으로 알려진 <오이디푸스 왕: Oedipus Rex>,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Oedipus at Colonus>, <안티고네: Antigone>를 추천하는 평론가들이 많다.

평론가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그리스 비극 중 시인, 산문작가, 철학자를 포함한 모든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작품이 오이디푸스다. 제일 먼저 이 작품을 깊이 들여다 본 인물은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그의 저서 시학(詩學: Peri Poetikes)에서, 비극과 서사시 를 비교 분석하며 "비극이 서사시 보다 더예술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대표적 작품으로 오이디푸스를 예로 들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테바이는비극이라는 장르를 품고 문학을 잉태한도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문학인들이외면받는 쓸쓸한 도시 테바이를 두고 "우리에게 그리스란 테바이를 말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비극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낯선 내용에 당황하기 일쑤다. 이유는간단하다. 그 비극과 연관된 신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읽고 싶은 비극이 있으면, 그 배경이 되는 신화를 먼저 공부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부터 아리스토텔레스가 칭송했고 헤겔의 소년 시절 깊은 감명을 주었던 비극 '오이디푸스 3부작'을 읽기 위한 배경 신화의 이야기를 해보자.

고대 그리스 테바이 왕 라브다코스가 세상을 떠날 때 왕위를 이어야 할 왕자라이오스(Lios)는 겨우 한 살이었다. 상황이 이러자 라이오스 외할아버지 뤼코스가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런데, 라이오스가 왕위에 오를 나이가 되었음에도 즉위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제우스의 아들 암피온이 테바이의 왕권을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라이오스는 테바이를 떠나피사 왕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는피사 왕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 왕자크뤼시포스에게 무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점점 정이 들어 갔다. 옛 그리스에서는 동성인 스승과제자가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큰 흉이 아니었다.

그런데 왕자 크뤼시포스는 라이오스와 그런 관계를 완강히 거절했다. 이 일로 라이오스는 크게 분노했던 모양이다. 그는왕자를 숲으로 유인해 목을 졸라 죽였다. 목격자가 없는 이 범죄는 미제의 사건으로덮였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지만, 신의 눈길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올림포스의 헤라 여신이 이 처참한 현장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암피온이 죽었다. 테바이의왕권은 자연스럽게 라이오스에게 넘어 왔다. 왕이 된 라이오스는 아름다운 여인이오카스테(Iocaste)를 아내로 맞아 들이었다. 금슬이 좋은 부부는 행복하게 살았지만 한가지 고민거리가 있었다. 이오카스테에게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초조 해지기 시작한 라이오스는 델포이를 찾아가 신의 뜻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가 공물을바치고 아폴론의 뜻을 묻자, 삼각대에 앉은무녀 퓌티아가 무아지경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들을 낳지 않는 것이 좋다.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아비의 아내와동침을 할 것이다."

참으로 해괴하고 끔찍한 신탁이었다. 큰 충격에 빠진 라이오스는 그날 이후 아내를 멀리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어찌 마음 대로 되는 것인가.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라이오스는 왕비의 침실을 찾았다. 얼마 후 그녀는 태기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달이 차고 아들을 낳았다. 경사스러운 일이었지만, 라이오스의 머릿속에는 신탁의 예언이 떠나지를 않았다. 결국, 그는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결심을 한다.

라이오스는 한때 키타이론(Kithairon) 산에서 양치기를 했던 경비병을 불렀다. 그는 경비병에게 아이를 숲속의 나무에매달아 놓고 내려오라고 명령을 했다. 왕으로부터 신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왕비 이오테스카는 아이를 경비병에게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강보에 싸인 아이의 발뒤꿈치는 이미 금실로 꿰인 채 단단히 묶여있었다.

경비병은 아이를 안고 키타이론 산에 올랐다. 그는 마음이 모질지 못한 사람이었다. 왕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그는 자기 손으로 아이를 죽이고 싶지 않아 산속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때 옛날에 함께 양을치던 코린토스 사람 양치기를 만나게 된다. 라이오스 경비병은 번뜩 "이 사람에게 아이를 주어 멀리 코린토스로 보내버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라이오스 경비병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코린토스 양치기에게 아이를 데려가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코린토스 양치기는선뜻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라이오스 경비병은 이렇게 말하며 아이를 넘겨 주었다.

"바라건대 이 아이를 코린토스로 데려가잘 키우기를 바라오. 그리고, 이 아이의내력은 묻지 말기 바리오."

양치기는 코린토스로 돌아오자 곧바로 아이를 안고 왕을 찾아갔다. 자식을 얻지 못하고 있던 코린토스의 왕 폴뤼보스(Po- lybos)와 왕비 멜로페(Melope)는 아이를보자마자 운명처럼 진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왕은 아이가 발뒤꿈치를 금실로 꿰매고 있어 발이 통통 부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오이디푸스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이디푸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통통 부은 발'이라는 뜻이다.

세월이 흘렀다. 폴뤼보스와 멜로페의 사랑을 받으며 오이디푸스는 어느덧 건강한 청년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실복도를 걷던 오이디푸스는 왕가 친척들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엿듣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폴뤼보스에게 그들의 이야기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왕은 실없는 이야기라며웃어넘겼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의 말을신뢰하면서도, 뭔가 꺼림직한 생각이 들어 델포이를 찾아가 신탁을 받아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델포이에 올랐다. 공물을바치고, 신의 뜻을 묻는 그에게 무녀 퓌티아가 술에 취한 듯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뼈를 준 아비를 죽이고, 살을 준 어미로짝을 삼는구나."

오이디푸스는 황당한 신탁에 기겁을 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그는 서둘러 마차에 올라도망치듯 델포이를 떠났다. 델포이에서 내려오다 보면 보이오티아와 경계 지점에 마차 두 대가 비켜가기에는 형편없이 비좁은험한 산길이 있다. 오이디푸스가 그 길을지날 때 저만치 앞쪽에서 한 마차가 다가오는데, 마차를 모는 병사가 소리쳤다.

"젊은이여, 길을 비키시오. 이 분은 귀한분이니 무례를 범하지 마시오."

오이디푸스는 길을 비켜 조심스럽게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상대 마차 안에서 그 귀한 분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오이디푸스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 오이디푸스는 그를 마차 밖으로끌어내서 몽둥이로 쳐 죽였다. 오이디푸스는 수행 병사 세 명 중 두 명도 낭떠러지로 던져 죽였다. 나머지 한 명만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 이 모든 일이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충격적인 신탁으로 오이디푸스는 부모 가 있는 코린토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던 그는 어느 날 테바이로들어오게 된다. 오이디푸스가 도착했을 당시 테바이는 인심이 흉흉했다. 사람들을 죽이는 스핑크스 때문이었다.

얼굴과 젖가슴만 계집이며 다리와 꼬리는 사자이고 등에는 두 날개가 달린 스핑크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해치고 있어 온 나라가 큰 혼란 가운데 있었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내 문제를 못 풀면 사람을 목 졸라 죽이고, 풀면 스핑크스가 죽는다고 했다. 스핑크스는 '목 줄라 죽이는 자'라는 말이다.

테바이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 소동이 무슨 연유인지 신에게 묻기 위해 델포이로 가던 왕이 말 도둑을 만나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선왕비의 동생 크레온(Cr- eon)이 왕으로 있는데, 그는 스핑크스를 죽이는 영웅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선왕비 이오카스테를 비로 삼도록 한다고공포를 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있는 피키온 산으로 향했다. 듣던 데로 피키온 산 열주 위에 요망스러운 스핑크스가 훼를 틀고 앉아 있었다. 오이디푸스와 마주치자 괴상한 새울음 소리 같은 말로 밑도 끝도 없는 수수께끼 문제를 던졌다.

"무엇이냐? 땅 위에 네 발로 걷는 것이 있다. 무엇이냐? 이름이 같은데 두발로 걷는 다. 무엇이냐? 이름이 같은데 세 발로 걷는 다. 무엇이냐?"

오이디푸스가 바로 대답했다.

"인간이구나! 태어나 바닥을 길 때는 네발이요. 자라서 걸을 때는 두 발이요. 늙어 지팡이와 함께 걸으니 세 발이다."

오이디푸스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스핑크스는 지붕에서 거꾸로 떨어져 석판바닥에 머리를 찧고 죽어버렸다. 스핑크스를 죽이고 테바이를 환난에서 구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 되었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약속데로, 그는선왕의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했다. 이렇게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현자'이며'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왕'이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오이디푸스의 선정으로 나라는 융성해지고 사회는 어느 때 보다 안정이 되었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는 두 아들과 두 딸이 태어났다. 쌍둥이 형제인 폴리네이케스(Polyne- ices)와 에테오클레스(Eteocles), 자매안티고네(Antigone)와 이스메네(Isme- ne)가 그들이다.

이렇게 평온하던 테바이에 어느 날 느닷없이 재앙이 찾아온다. 가뭄이 들고 역병이 창궐하여 도시가 순식간에 음울한 저주의 도시가 되었다. 오이디푸스 왕의 선정을 찬양하던 사람들의 노래가 죽음을 애도 하는 장송곡으로 변했다. 오이디푸스는처남인 크레온을 델포이로 보내 아폴론의 신탁을 받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궁안에 제단을 만들고 향을 피운 후, 조용히 앉아 크레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3부작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를 읽기 위한 사전 신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2], [3]에서 세 비극을 최대한압축해 보겠습니다^^

김종호

•위 글은 아래 책에서 인용하거나 참조한 부분이 있다. -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저-<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Sophocles> Robert Fitzgerald -<역사철학 강의> 헤겔/ 권기철 옮김-<수사학/시학> 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