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고향 테바이 (Thebai) [3]
오이디푸스가 테바이 왕실을 떠날 때, 가족 중 맏딸 안티고네가 그에게 다가와부축했다. 그녀는 장님이 된 불쌍한 아버지의 손발이 되기 위해 함께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그렇게 떠난 두 사람은 낯선 땅을동냥으로 끼니를 때우며 헤맨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이국을 떠돌던 부녀간의 아래와 같은 대화와 함께 시작된다.
"눈먼 노인의 딸 안티고네야, 우리가 대체 어떤 곳, 어떤 사람들의 도시에 온 것이냐?"
"이곳은 분명히 신성한 장소 같아요. 월계수와 올리브나무와 포도덩굴이 우거지고, 그 안에서 꾀꼬리들이 고운 목소리로 노래 하고 있어요."
안티고네가 신성한 장소 같다고 말한 곳은 바로 아테네 북쪽 근교 콜로노스다.
요한 페테르 크라프트가 1809년 그린'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라는 그림이 있다. 천병희 번역의 <소포클레스 전집>의 표지그림이기도 한 이 작품 속에는,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내용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림의 해설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장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읽은 독자라면 이곳이 콜로노스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충돌하는사고(思考)들이 담론(談論)을 통해 진리를 찾아 간다라는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은 울고 있는 안티고네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이며 오빠이기도 한 오이디푸스의무릎에 기대어 울고 있는 그림 속 모순(矛盾)의 안티고네가, 젊은 날 고뇌하는 헤겔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콜로노스는 이 비극을 쓴 작가 소포클레스의 고향이다. 작품 <오이디푸스 왕>이신과 인간의 불화가 주제였다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화해와 구원이 주제다. 저주받은 오이디푸스를 자신의 고향 콜로노스로 불러, 그를 구원하고 그의 탄원을받아들인 아테네를 축복한다는 작가의플롯(Plot)이 흥미롭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은 아테네 건국자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다. 테세우스는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전설적 영웅이 다. 그리고 콜로노스 주민과, 지역 원로들로 구성된 코로스다.
오랜 걸인 생활 끝에 도착한 콜로노스에서 안티고네의 대답을 들은 오이디푸스가 이렇게 말했다.
"내게 그 많은 불행을 예언하신 포이보스(아폴론)께서는 내가 종착지에 도착해존엄하신 여신들의 거처에서 피난처를발견하게 되면 안식을 얻으리라 말씀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고달픈 인생을 마감할 것이며, 나를 받아주는 자에게는 복을 줄 것이고 나를 내쫓는 자들에게는 재앙을가져다줄 것이라 말씀하셨다."
오이디푸스는 콜로노스로 자신을 인도한 것은 신의 뜻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예언이성취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선행 조건이 있었다. 먼저 그는 아테네 시민이 되어 콜로노스 성소 원림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하나는 테바이의 소환 명령을 물리쳐야 한다.
오이디푸스가 콜로노스의 성소에서 처음 만난 주민은 "그곳은 무서운 여신들의 소유이니 빨리 나오라"라며 야단을 친다. 오이디푸스는 그를 설득하여 아테네의 왕을 불러 줄 것을 부탁한다. 주민은 눈먼 걸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인의 풍모를 보이는 오이디푸스의 요청을 정중히 받아들인다.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테바이에서 오이디푸스의 둘째 딸 이스메네가 그들을 찾아왔다. 세 부녀는 눈물로 상봉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메네가 고국에서 들고 온 소식은 끔찍했다. 그녀의 전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오이디푸스가 떠난 후, 두 아들은 권력 다툼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형 폴리네이케스가 아우 에테오클레스에게 쫓겨이웃나라 아르고스로 망명을 했다. 그런데, 아르고스에서 폴리네이케스는 여러 장수들과 친구를 삼았는데, 그들이 지금 힘을 모아 테바이로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이디푸스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테바이에서는 지금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에서 임종을 맞이해야 하고, 그 무덤을 돌보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라는 신탁을 받게 되어, 오이디푸스를 반드시소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소식이 다.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를 모시러 갔던 콜로노스 주민이 왕과 함께 돌아왔다. 영웅 테세우스가 테바이의 비극적인 왕 오이디푸스를 만나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테세우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말했다.
"라이오스의 아들이여, 가련한 오이디푸스여, 우리 도시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어 온 것이오? 그대 같은 이방인이면 누가 보호해 주기를 거절하겠소."
오이디푸스는 아폴론의 신탁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이테네 시민으로 받아주고, 콜로노스 성소 원림에 머물게 해 줄 것을청원한다. 그는, 또, 테바이에서 자신을 강제로 소환하려 할 것인데 이를 막아 줄 것을 요구했다. 만약, 자신의 청원을 받아 주면 아테네에 신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의 탄원을 기꺼이 다 받아 준다는 약속을 하며 왕궁으로 함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신의 뜻에 따라 자신은 콜로노스에서 임종을 맞아야 한다며 이를 완곡히 거절한다. 부정한 인물이라고 추방을 명령할 법도한데,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 테세우스의모습에는 역시 영웅의 기개가 넘친다.
아테네 시민이 된 오이디푸스를 환영하는 코로스의 축하 노래가 들려온다.
"나그네여, 그대가 찾아온 이 준마(駿馬) 의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오. 이곳 백색의 콜로노스에는 꾀꼬리가단골손님으로 날아와 푸른 계곡의 덤불 속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한다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이스메네의 말처럼 크레온이 오이디푸스를 송환하러 호위병들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테바이의 실질적 지배자 크레온이 오이디푸스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오이디푸스여, 이제 내 말을 듣고 그대의조상들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함으로써, 먼저 이 도시에 다정하게 작별 인사를 하시오."
오이디푸스는 콜로노스를 떠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며 크레온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곳을 떠나게. 우리가 여기 사는 것을방해하지 말고. 이래 봬도 우리가 만족하는한 우리 삶은 나쁘지 않다네."
말로 안 되겠다고 판단한 크레온은 두 딸을 먼저 강제로 끌고 간다. 오이디푸스가반항하고 코로스 장이 말리지만 크레온은막무가내다. 결국, 크레온은 군사들에게오이디푸스를 끌고 가라고 명령을 했다.
콜로노스에 이런 소란이 일고 있을 때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가 나타난다. 상황을파악한 테세우스는 크레온에게 경고를 했다.
"그대는 그 소녀들을 내 눈앞에 데려다놓기 전에는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할 것이오."
크레온은 강력한 아테네 왕 테세우스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아테네 군에 의해 콜로노스로 돌아 왔다. 세 부녀는 다시 만나 기쁨을 나눈다. 코로스의 노래가 들려왔다
"긴긴 세월은 즐거움보다는슬픔에 가까운 많은 것을 쌓기 마련이고-경박하고 어리석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누가 고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가 노고(勞苦)에서벗어날 수 있단 말이오?"
코로스의 노래처럼 오이디푸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다가오고 있다. 동생과 귄력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아들 폴리네이케스가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동생 에테오클레스가 자기를 추방한 것은 부당한 짓이라고 비난하며, 테바이를 공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했다.
폴리네이케스가 아버지를 찾아온 것은자기의 형편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테바이 공격 준비를 마친 그에게 "아버지가 편드는 쪽이 이길 것이다"라는 신탁이떨어졌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테바이를 떠난 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아들 폴리네이케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다시 언덕으로 둘러싸인 아르고스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오히려 너는 친족의 손에 죽고, 너를 내쫓은 자를 죽일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예언이다. "형제가 싸우다 서로를 죽일 것이다"라는 저주였다. 폴리네이케스는 울면서 돌아선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죽음을 예견했는지 옆에 서 있는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너희에게 신들의 이름으로 부탁하노라. 여기 계신 아버지의 저주가 이루어 지고, 혹시 너희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를 욕하지 말고 나를 묻어주고장례를 치러다오."
안티고네가 오빠에게 매달리며 애원했다.
"군대를 되도록 빨리 아르고스로 되돌리고 오라버니 자신과 우리 도시를 파괴하지마세요."
그러나 폴리네이케스는 작별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붙잡지 마라.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 아버지와 복수의 여신에 의해 불길한 징조들로 가득 찬 이 사악한 운명의 길을.... "
폴리네이케스가 떠나며 코로스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보라, 새로운 재앙들이 닥치는구나. 눈먼 나그네로부터.... 신들의 포고는공허한 것이 아니니, 시간은 언제나 그포고를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다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오이디푸스는 이제 이승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두 딸들에게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속히 이테네의 왕 테세우스를 모셔오도록 요청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테세우스에게 오이디푸스가 말했다.
"내가 죽을 장소로 가는 길을 그대에게보여주겠소. 그대는 누구에게도 그 장소를 말하지 마시오. 그러면 그곳은 누구보다훌륭히 아테네와 그대를 지켜줄 것이오.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내 딸들에게도 말하면 안되오.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두 딸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오늘로 너희에게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모든 것이소멸하여, 너희는 더 이상 나를 부양하는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단 한 사람 테세우스만 지켜보는 가운데 오이디푸스는 여신들의 숲 원림코로노스에서 코로스의 노래처럼 아무런 고통 없이 이승을 떠났다.
"보이지 않는 여신과 그대 밤의 자식들의 왕을기도로써 공경하는 것이 내게 허락된다면, 하데스여, 하데스여, 내 말을 들어주소서! 저 나그네가 고통을 당하지 않고, 통곡을 자아내는 운명도 맞지 않고, 모든 것을 안에 감추고 있는 하계(下界)로, 사자들의 들판과 스튁스의 집으로 가게해주소서! 수많은 슬픔이 까닭 없이 그를 덮쳤으니, 그 보상으로 어떤 정의로운 신께서 그를 높여주시기를빕니다!
이제 그만 울음을 그치라는 테세우스에게안티고네가 아버지의 무덤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안 될 일이오. 소녀들이여, 그분이 내게 금지했소. 어떤 사람도 그 장소에 접근하거나, 그분이 누워 있는 신성한 무덤을부르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오."
안티고네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테세우스의 허락을 받은 후 동생 이스메네와 함께 고국 테바이를 향해 콜로노스를떠난다. 코로스의 노래와 함께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막을 내린다.
"자, 이제 곡(哭)을 멈추고 누구도 더 이상 만가(挽歌)를 부르지마세요. 이 일들은 다 신의 손에 있기 때문이니까요."
김종호
•당초 Part [3]로 끝내려 했으나 스토리연결이 어려워, Part [4] <안티고네>로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림 설명: 요한 페테르 크라프트의'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위 글은 아래 책에서 인용하거나 참조한 부분이 있다. -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저-<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Sophocles> Robert Fitzgerald -<역사철학 강의> 헤겔/ 권기철 옮김-<수사학/시학> 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