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Mycenae)의 왕자 오레스테스(Orestes) [1]
아이스퀼로스(Aischylos)는 소포클레스(Sophokles), 에우뤼피데스(Euripises) 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한 명이 다. 그는 기원전 525년 아테네 서쪽 엘레우시스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이스퀼로스는 독특한 이력을 하나 갖고 있다. 그는 기원전 480년 45세의 나이로, 페르시아와의 대격전이었던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하였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승리의 기쁨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그는 국가와 개인 간 그리고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깊이 통찰하는 힘을얻었다.
그의 이런 체험과 탐구적 사고는, 그가창작한 비극에 오롯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70여 편의 비극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 남아있는 작품은 7편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의대표작이라고 알려진 "오레스테이아 3부작"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아가멤논: Agamemnon>,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Choephoroi>, <자비로운 여신들: Eumenides>을 일컫는 말이다. '오레스테이아'는 '오레스테스(Orestes)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오레스테스가 아가멤논의아들이니, 이 작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배경인 두 가문에 대한 신화를 공부하면 좋다. 스파르타와 미케네 왕실에 대한 이야기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로 까지 이어지는 두 가문의 신화는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다.
먼저, 트로이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던 신화 속 최고의 미녀 헬레네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녀의 이야기는 어머니 레다에서 시작된다. 헬레네의 어머니 레다도 당대의 미녀였다. 스파르타 왕 튄다레오스의 부인 레다가 어느 날 호숫가에서 시녀들과 놀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우연히 이 모습을 바라보던 바람둥이 신들의 왕 제우스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흑심을 품게 된다.
기회를 엿보던 제우스는 백조로 변신해레다를 꼬드겨 덮쳤다. 제우스와 레다의정사 장면은 수천 년에 걸쳐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열정을 불어 넣었다. 고대 사회는 물론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숱한 근현대의 예술가들도 이 신화의 장면을 그리고 조각했다.
글의 흐름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인데, 나는 몇 년 전 크레타 이라클리온 시내를여행하다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유럽 문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방대한 미노아 문명 유물들이전시되어 있어, 역사나 고고학에 관심 있는여행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곳이다.
나는 전시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던 중 한 유물 앞에서 깜짝 놀라 한참을 서 있었다. 바로 아담한 크기의 석판에 조각된제우스와 레다였다. 수천 년 전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현대의 미인 같은 레다의얼굴과 관능적인 표현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적 수준에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아래 사진 참조)
다시, 튄다레오스 집안 이야기를 해보자. 제우스와 정을 통한 레다는 달이 차고 두 개의 알을 낳았다. 두 개의 알을 낳은 것은 레다가 제우스와 정을 통한 날 마침 전장에서 돌아온 남편 튄다레오스와 동침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개의 알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태어난다. 폴리데우케스와 헬레네, 카스토르와 클리타임네스트라다. 신화에 따라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폴리데우케스와 헬레네가 제우스의 자식으로, 카스트로와 클리타임네스트라가튄다레오스의 자식으로 보고 있다.
네 자식 중 헬레네는 절세의 미녀였다. 호메로스는 그의 작품 <일리아스>에서헬레네를 "그 생김새가 불사의 여신을닮았다"라고 썼다. 그녀는 뭇 그리스의영웅호걸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이 소란을정리한 자가 오뒷세우스다. 그는 구혼자들에게 "헬레네의 신랑이 누가 되든 승복 하고 그들의 혼인을 훼방놓으면 모두가 힘을 합쳐 싸우자"라는 제안을 했다. 구혼자들 모두가 오뒷세우스의 이 의견에 동의 하고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지상에서 많은 활약을 하던 카스토르와폴리데우케스는 제우스에 의해 하늘에올리어 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 둘이 바로 "쌍둥이 별자리"다. 아들 둘이 사라져 버리자 스파르타에는 왕권을 이을 핏줄이 없어졌다. 마침 그즈음 스파르타에는 피신해 온 미케네의 왕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살고 있었다. 두 아들은 숙부 티에스테스가 아버지 아트레우스를 죽이고 권력을 잡는 정변이 일어나자 스파르타로 피신해 있었다.
스파르타의 왕 튄다레오스는 두 형제 중동생인 메넬라오스를 헬레네와 결혼을 시켜 왕권을 승계토록 했다. 그리고 형 아가멤논은 헬레네의 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결혼을 한다. 그 후 두 형제는 미케네로진격하여, 숙부 티에스테스를 제거하고 형 아가멤논이 미케네의 왕이 되었다.
끝부분에 미케네 왕실과 이야기가 약간겹친 부분이 있지만, 여기까지는 스파르타 왕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금부터는 미케네와 스파르타의 왕권을 모두 차지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가계의 형성과 경위를따라가 보자. 아가멤논의 조상은 리디아 (오늘날 터키)의 왕 탄탈로스다. 탄탈로스의 자손들은 그리스 비극에서 "탄탈로스 가문의 저주"라는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탄탈로스는 생전에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그중에서도 신의 능력을 시험한다며 신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아들 펠롭스로국을 끓여 대접한 일이 있었다. 당연히 신 들은 먹기 전에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하였다. 그리고 제우스는 펠롭스를 불쌍히여겨 그를 다시 살렸다.
그 후 탄탈로스는 하계 타르타로스로 추방당하여 그곳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의 형벌은 늘 목까지 물이 찬 호수에 잠겨 있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이 밀려나 마시지 못하게 하는 고통이었다. 영어 어휘 중 오늘날까지 많이 사용되고 있는 동사 "감질나게 하다: 텐털라이즈(Tantalize)"의 어원이 바로 이 "탄탈로스의 형벌"이다. 신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탄탈로스의 자손 대대로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펠롭스는 부활한 후에 아버지 탄탈로스의 고향 리디아 시필로스를 떠나 그리스 남부엘리스로 갔다. 당시 엘리스의 왕은 전쟁의 신 아레스의 아들인 오이노마오스였다. 그는 딸 히포다메이아에게 비정상적으로집착하고 있었다. 그것은 "장차 히포다메이아의 신랑이 자신을 죽일 것이다"라는 신탁 때문이었다.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자, 왕은 "딸과 결혼할 사람은 자신과의 전차 경주에서 이겨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어느 날, 히포다메이아 공주를 본 펠롭스는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오이노마노스와의 전차 경주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왕의 전차 모는 실력은 추종을 불허했으며, 전차는빠르고 사나운 아레스의 말들이 끌었다. 시합에 지면 오이노마노스는 규약에 따라청혼자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소문에는 이미 청혼자 1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고심하던 펠롭스는 왕의 마부로 일하고 있던 헤르메스의 아들 마르틸로스를 매수하기로 했다. 펠롭스가 마르틸로스에게보상으로 제시한 것은 두 가지다. "왕국의반을 준다"와 "히포다메이아와 첫날밤을 그에게 양보한다"였다. 공주를 연모하고 있던 마르틸로스는 펠롭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펠롭스와 오이노마노스의 전차 경기가시작되었다. 펠롭스는 포세이돈에게 말을 빌려 전차를 꾸렸다. 오이노마노스의 비극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왕의 마부마르틸로스가 전차 바퀴에 굴대 못을 끼우지 않고 밀랍으로 채운 것이다. 오이노마노스가 달리던 마차에서 창을 들어 펠롭스를찌르려는 순간 마차의 바퀴가 빠지고 전복 되며 즉사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그것도 자신의 것을 누군가와 나누어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게 된 펠롭스는마르틸로스와의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분노한 마르틸로스가 히포다메이아를겁탈하려 들자, 펠롭스는 그를 절벽에서밀어 뜨려 죽인다. 그는 이렇게 자신에게 결정적 도움을 준 마르틸로스와의 약속을저버리고 그를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다.
펠롭스는 엘리스에서 피사로 돌아왔다. 세월이 흘렀다. 그는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여 16명의 아들과 5명의 딸을 낳았다. 그런데, 펠롭스에게는 님프 다나이스와의 사이에 크뤼시포스라는 아들이 또 있었다. 펠롭스는 이 아들을 유별나게 총애했다. 히포다메이아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기가 낳은 아들들을 제쳐두고, 크뤼시포스가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히포다메이아의 많은 자식 중에 특별히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가 영웅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났으며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 히포다메이아는 이 두 아들에게크뤼시포스를 죽이라고 사주했다.
신화는 한 가지 사실을 다르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종종 있다. 그것은 신화의 주제를 어느 곳에 맞추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전승(傳承)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전해지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읽은 독자들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가 한때 피사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 라이오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왕자를숲속에서 죽이므로, 아들 오이디푸스와자손들에게 저주의 기원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라이오스의 손에살해되었던 왕자가 바로 펠롭스의 아들크뤼시포스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는 라이오스가 "숲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였다"라고 단순하게매듭을 짓지만, 펠롭스의 신화에서는 복잡한 왕실의 암투가 얽혀 있다. 그것은 왕비히포다메이아의 사주를 받은 아트레우스 와 티에스테스가 라이오스에게 이복동생크뤼시포스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실행토록 했다는 것이다.
끔찍이 아끼던 아들을 잃고 슬퍼하고 있던 펠롭스는 이 사건에 아내 히포다메이아와 두 아들 아트레우스, 티에스테스의 음모가 있었다는 사실을을 알게 된다. 펠롭스는분노했다. 그는 세 모자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펠롭스의 가혹한 조치에 충격을 받은 왕비 히포다메이아는 자결을 했다. 그리고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 형제는 미케네로 건너가 그곳 왕실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김종호
▪︎위 글 Part [1]과 이어지는 Part[2]는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읽기 위한 사전 신화 지식이라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호메로스의 작픔 <일리아스>의 이해를 돕는 중요배경지식이기도 하다.
▪︎사진 설명: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나 찍은, 석판에 조각한 "제우스와 레다" 고대 미노아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