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Mycenae)의 왕자 오레스테스(Orestes) [3]
<아가멤논>은 아이스퀼로스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다. <아가멤논>은 길거리 포스터로도 쉽게 눈에 띈다. 그만큼 연극이나 오페라로 자주 공연 되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비극이 그렇듯이, <아가멤논>도 이해하기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공연을 감상할 기회가 오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비극 <아가멤논>은 아르고스(미케네) 궁전의 지붕에서 경비를 보고 있는 파수병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지금 10년째트로이에서 들려올 승리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파수병은 "지금 이 순간도 나는횃불의 신호가, 트로이의 함락을 알리는 찬란한 불빛이 오르기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날 밤,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리던 순간 이 거짓말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트로이에서 승리를 알리는 봉화의 불빛이 떠오른 것이다. 파수병은 만세를 부르며 자리에서벌떡 일어난다.
파수병: 오오, 반갑구나. 밤을 대낮같이밝혀주는 불빛이여! 만세! 만세! 아가멤논의 아내에게 이 사실을소상히 알려야지.
그런데 파수병의 독백에는 묘한 뉘앙스의 말이 있다. 주인인 아가멤논이 돌아오면 "그동안 집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라며, 알 수 없는 불행을 예견하는 듯한 혼잣말을 하고 있다.
아가멤논의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가분주하게 제물을 바치다 코로스의 노래가들려오며 물러난다. 코로스의 긴 노래가이어지는데, 특히, 아르테미스의 사슴을죽여 여신의 노여움을 사 아울리스 항에서발이 묶이고, 아가멤논은 어쩔 수 없이 맏딸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던 슬픔을 노래한다.
코로스: (아가멤논은) 왕홀로 땅을 치며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네. 그녀의 기도에도, "아버지!"라고부르짖는 그녀의 절규에도, 그녀의 청순한 청춘에도 호전적인 지휘관 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네.
제물을 바치고 있는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바라보며, 무엇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있냐라는 코로스장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한다.
"아르고스인들이 프리아모스의 도시를함락했소이다." (아르고스는 미케네와 동일한 고유명사로해석할 수 있다.)
기뻐하는 코로스장에게 그녀는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트로이에서 아르고스까지봉화불로 알릴 수있도록 미리 준비를 다해 놓았다고 자랑을 하자, 코로스장이 그녀에게 존중을 표한다.
코로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준 제우스 신에게 영광을 드리고, 전쟁을 야기한 파리스와 헬레네의 부정을 꾸짖는다. 그리고 코로스는 전쟁의 승리 뒤에 드러나지 않은, 가족을 잃은 수많은 가정들의 참상과 원한을 노래한다. 전쟁의 승리가 항구적인 평화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며, 언제든지 불행은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코로스: 실로 가슴 아린 일들이 많았으니 그들이 떠나보낸 이들이 누구인지알건만 집집마다 돌아오는 것은 사람 대신 단지와 유골뿐이었다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 아니면 신들의 속임수인지 누가 알랴?
뒤이어 전령이 등장하여 전쟁의 승리를 알리고,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을찬양한다. 전령과 코로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나타나 대화에 끼어들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지난 10년 동안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며수절했노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남편이 돌아오면 그이가 떠날 때처럼 집안에서 수절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될 것이오. 다른 남자들과 재미를 보는추문 같은 것은 나와 인연이 머니까. 이것이 내 자랑이요."라는 과장된 자기자랑이 낯간지럽다.
드디어 아가멤논이 길고 긴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돌아온다. 마차 안 그의 뒷자리에는패망한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 공주가 앉아있다. 그녀는 아폴론 신에게 예언의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하므로 아무도 그의 예언을 믿지 않는 벌을 받은 모순의 여인이다.
아가멤논의 마차가 궁으로 들어서자 코로스의 개선한 왕을 찬양하는 노래가들린다. 아가멤논은 먼저 살아 고향에 돌아온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는 10년을 끌어오던 전쟁을, 목마로트로이인들을 속여 승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아가멤논은 아직 고향 이타카에 가지 못하고 소식이 끊긴 오뒷세우스를 걱정했다.
클리타임네스트라가 하녀들과 함께 아가멤논을 맞이한다. 그녀는 먼저 모여 있는 아르고스(미케네) 시민들에게 자신의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아들은 지금 이웃나라 포키스에가 있다고 말하며, 남편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들떠있는 모습으로 아가멤논이 걸어오는 길에 융단을 깔고 요란을떨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아르고스 시민들에게) 아르고스 시민들이여, 이 자리에 있는 원로들이여, 왕께서 일리온에계실 때, 그 긴긴 세월 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는지를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여자가 남편과 떨어져 독수공방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요.
(아가멤논에게) 오레스테스는 우리 곁에 있어야당연한데도 이곳을 떠났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우리의 우호적인 포키스의 스트로피오스가 그 애를 보살피고 있으니까요. 나 자신에 관해 말하자면 너무 많이 울어 이제는 눈물도 말라 버렸어요. 당신의 봉화를 기다리며 울었지요. 꿈결에도 각다귀 날개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곤 했지요. 오오! 온갖 고난에서 해방된 기쁨이여! 당신은 정말 칭송을 받아 마땅해요.
(하녀들에게) 하녀들아, 너희들은 뭘 꾸물대느냐? 길에다 융단을 깔라고 내 너희에게이르지 않았더냐? 어서 자줏빛 길을만들도록 해라.
아가멤논은 아내의 과장되고 분에 넘치는칭찬과 환대가 부담스러웠다. 그는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신들의 시기를 살수 있으니 융단을 밟고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자줏빛 천을 밟으라고강권하였다. 아가멤논은, 결국, 마지못해신발을 벗고 융단을 밟으며 궁안으로 들어 갔다.
아가멤논이 궁안으로 들어가자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조용히 "오오, 성취자 제우스여, 내 기도를 성취하소서!"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녀는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것인가? 그녀의 말속에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코로스도 불안을 감지했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노래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직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는 카산드라에게 어서 궁안으로들어가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공주 카산드라는 웬일인지 좀처럼 마차 안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말을 듣지 않는 카산드라에게 짜증을 내며 궁안으로 들어간다.
예언녀 트로이 공주 카산드라는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불행을 예견하고 울고 있었다. 그녀는 아르고스(미케네) 궁전에서이어져 온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의 저주를 보고 있다. 탄탈로스의 저주가 있는 집, 아이들을 삶아 동생에게 먹였던 아트레우스, 복수를 위해 딸을 겁탈했던 티에스테스, 그 끝없는 악행들을 보고 있다. 카산드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자신이 이 저주의 집안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가는 신세가 슬프고원망스러웠다.
카산드라: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아폴론이여, 아폴론이여! 길의 신이여, 나의 파괴자여, 그대는 나를 두 번이나 완전히파괴하시는군요.
아아, 아아! 신을 두려워 하지 않는 집, 친족을 살해하고, 목을 베고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가!
여기 자신들이 도살되었다고슬피 우는 어린 아이들이 있고, 아비들이 먹어치운, 불에 구운살코기도 있네요.
카산드라는 코로스장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예언을 한다. 그녀는 "한 여인이 욕조에서잠자리를 같이하는 남편을 죽일 것이다."라는 섬뜩한 말을 했다. 그녀는 이어 "이 집안의 저주는 형의 침상을 짓밟은 자로부터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코로스장은 먼이국에서 온 여인이 미케네 궁의 해묵은골육상쟁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카산드라의 예언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직설적으로 표현되어 갔다. 그녀는 요란스럽게 환영을 했던 클리타임네스트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함대의 사령관이요 트로이의 정복자인그분을, 더러운 암캐의 혓바닥이 음흉한아테처럼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럴싸한 말을 길게 늘어놓자, 악의 축복을 받으며 (아가멤논은) 그녀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고 있어요."
카산드라는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코로스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카산드라를 나무란다.
카산드라: 여러분들은 아가멤논의 죽음을보시게 될 것이오. 코로스장: 닥치시오, 가련한 여인이여. 그런 불길한 말은 입 밖에 내지마시오.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의 죽음 후에 일어날일들도 예언을 했다. 지금 이국땅에서 유랑 하고 있는 아가멤논의 아들이 돌아와 어미를 죽이고, 가문을 위해 이 모든 악행의갓돌을 놓을 것이라고.... 그녀는 자신은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 값을 치러야 할 운명을 피할 수 없으며,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카산드라는 "비록 노예의 몸이지만 내 죽음에도복수를 해주기 바란다."라며 궁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아가멤논이 욕조에서 쉬고 있을 때, 칼을 숨기고 들어온 클리타임네스트라가 그를 찔렀다. 궁전 안에서 아가멤논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정통으로 얻어맞았구나. 치명타로다." 잠시 후, 다시 한번 아가멤논의 고통스러운외침이 들린다. "아아, 또 한 번. 두 번째로 얻어맞는구나."
아가멤논의 비명소리에 코로스와 코로스장이 뛰어 들어가자, 문들이 활짝 열리며욕실 앞에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서 있다. 욕조에는 수놓은 천으로 덮여 있는 아가멤논의 시신이 누워있다. 바로 그 곁에는카산드라의 시신이 보인다. 이렇게 트로이 평원에서 만군을 지휘하던 그리스군의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집에 돌아온 첫날 그의 처의 칼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말문을 열고, 코로스는 놀라움과 분노와 슬픔의 노래를 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 해묵은 불화를 끝내줄이 결전을 나는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고 이제 드디어 성취했을 뿐이오. 코로스: 오오 여인이여, 그대는 땅에서 자라는 독초를 먹었소? 아니면 바다에서 솟는 독액을먹었소? 대체 무슨 독약을 먹고 자랐기에 그대는 이토록 백성들의원성과 저주를 짊어지는 것이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코로스장에게 "왜 아울리스 항에서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내 산고(産苦)의 소중한 결실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 때는 잠자코 있었소?"라며 비난한다. 그녀는 "정의의 여신과 아테와 복수의 여신에게 자식의 원수를갚기 위해 아가멤논을 제물로 바쳤을 뿐이다"라며 항변한다.
그러나 비극 <아가멤논>의 막이 내릴 무렵,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가 등장 하며, 그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의 아버지 티에스테스와 함께 미케네에서 추방되었던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장에 있는 틈을 타서 궁에 다시 들어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독자들은 당연히 그녀가 아가멤논을 찌른 칼이 아이기스토스의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의 어머니 펠로페이아로부터 받아, 바닷가에서 제를 올리던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를 찌른 칼이었을 것이라고상상하며, 다시 한번 이 집안의 질긴 골육상쟁을 생각하게 만든다.
코로스장과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다투고 있을 때 아이기스토스가 호위병들과 함께 등장한다. 그의 위세는 이미 아르고스 궁의 주인처럼 당당하다. 아이기스토스는 자기 아버지가 저질렀던 형수와의 패륜적불륜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아트레우스의 잔혹 행위만을 비난했다.
아이기스토스: 내 분명히 밝혀두거니와, 이 나라의 왕이던 이자의 아비 아트레우스는 나의 아버지이며 자기아우인 티에스테스에게 왕권을 도전 받게 되자 그분을 도시와 집에서추방했소이다.
(그 후 화해를 한다는 명분으로 나의 아버지 티에스테스를 불러) 이자의아비는 환영하는 척하며 축제일을기념한답시고 형제간의 우애 이상의열의를 보이며 그분의 친자식들의살점으로 그분께 잔치를 베풀었소.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소이다. 내눈으이자가 정의의 여신의 올가미에 걸린 것을 보았으니 말이오.
코로스장이 아이기스토스에게 "그대의머리는 백성들이 던져대는 돌과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라며 꾸짖자, 아이기스토스는권력은 이미 자기 손에 넘어왔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코로스장에게 경고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아르고스를 통치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아이기스토스: 이제 나는 이자의 재산을밑천 삼아 시민들을 다스릴 작정이요. 그리고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무거운 멍에를 씌울 참이오.
그러나, 코로스장이 그를 "여자를 시켜살인을 한 비겁한 자"라며 계속 꾸짖자, 아이기스토스는 호위병을 부르며 체포할기세를 보인다. 코로스들도 물러서지 않고 칼을 빼들자,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나서서아이기스토스를 말린다. 이때 그녀는 아이기스토스를 "내가 가장 아끼는 남자여!"라고 부른다.
클리타임네스트라: 허튼소리는 그만 무시해버리세요. 나와 당신은 이 집의 주인으로서 만사를 잘 꾸려나가야 하니까요.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가 궁전으로 퇴장하고 코로스는 오케스트라를 떠나며 비극 <아가멤논>은 막을 내린다.
ㅡ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Oresteia)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로 이어가겠습니다.
김종호
▪︎위 글은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천병희옮김/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
▪︎사진 설명아가멤논을 살해하기 전 클리타임네스트라/피에르 나르시스 개랑 작/ 그녀의 뒤에 아이기스토스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