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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5자·8분 남짓·미케네(Mycenae)의 왕자 오레스테스(Orestes)

미케네(Mycenae)의 왕자 오레스테스(Orestes) [4]

신화 작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청년 시절 영어 공부를 할 때, '전기'라는 단어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의 어원이형형한 눈빛의 신화 속 여인 '엘렉트라(El- ectra)'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글을 쓰기 시작하며 이를 확인하려 했으나, 확실한 기록을 찾지 못해 잘못 알고 있었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발행한 <고대 신화 인명사전>에서, 그는 엘렉트라가 '호박(琥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글귀를 보게 되었다. 영어의 전기Electricity의 어원은 그리스어 호박이 라틴어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결국, 이윤기는 두 단어가 분명히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굳이 어원학을 끌어들이지 않아도엘렉트라와 일렉트리시티는 발음에서부터 상당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엘렉트라는 아가멤논의 1남 3녀 중 둘째딸이다. 그녀는 언니 이피게네이아와 동생크리소데미소와 달리 자존감이 강하고저항적이었다. 그녀는 특히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군 총사령관이었던 아버지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말은 "남성 이 동성인 아버지를 미워하고 이성인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려는 복잡한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는 심리학적 용어다. 그런데 이와 반대 개념의 말이 있다. 바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다. 딸이 "무의식중에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구하려는 심리적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머니의 부정과 독선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는 그리스 비극 작가들에게 중요한 작품 소제가 되었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모두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썼다. 소포클레스와에우리퓌데스가 <엘렉트라>라는 동명의 비극을 썼으며, 아이스퀼로스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을 썼다.

그녀는 아버지 아가멤논이 그리스 군 총사령관이 되어 트로이로 떠날 때, 아울리스항에서 언니 이피게네이아가 아르테미스 여신의 제물로 바쳐지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떠난 집에서 일어난 일은 그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어느 날 궁에 들어온 아이기스토스라는자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 엘렉트라는 직감적으로 어린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외국에서 공부시킨다는명분을 내걸며 재빨리 동생을 이웃나라포키스로 피신을 시켰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버지 아가멤논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아르고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온 날 밤, 가족과 상봉의 기쁨을 나눌 틈도 없이, 그는 어머니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그 뒤, 궁에 남아 있던 엘렉트라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동생 크리소데미소가 운명을 받아들이며 궁전의 지배자인 어머니와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고분고분했던 반면 엘렉트라는 날을 세우며 반항적이었다. 그럴수록 두 사람은 엘렉트라를 더 심하게박해를 했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은 오레스테스가, 망명지 포키스에서 함께 컸던, 죽마고우 필라테스와 같이 아버지 아가멤논의 무덤을 찾아오며 시작된다. 그의 손에는 자신의 머리에서 잘라 만든 두 개의 머리털 타래가 들려있었다. 하나는이나코스 강에, 하나는 아버지 무덤에 바칠예정이었다. 그는 먼저 아버지의 무덤에타래 하나를 바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가 타래를 무덤가에 놓고 애도의 뜻을 바치고 있을 때, 저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여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레스테스와 필라테스는 서둘러 무덤 뒤로 몸을 숨겼다.

오레스테스는 깜짝 놀랐다. 제주(祭酒)를 들고 오는 여인은 틀림없는 누이 엘렉트라였다. 그들이 아버지의 무덤 앞에 모였다. 엘렉트라와 함께 있는 여인들은 노예 여성으로 구성된 코로스였다. 코로스가 노래 하고 엘렉트라는 제주를 바친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엘렉트라: 아버지께서 부디 나와 나의 골육지천인 오레스테스를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가 이 집을 다스리게 해 주소서. 우리를 낳은 그 여인이 우리를 팔았어요. 그리고 우리 대신 살인에 가담했던 아이기스토스라는 사내를사들였어요. 오레스테스가 행운의인도를 받아 고향에 돌아오게 해주소서. (그래서) 이번에는 거꾸로 살인자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해주소서.

코로스: 이제 제주를 바쳤으니, 선악을 초월한 이 무덤에돌아가신 주인을 위해 눈물을 뿌려저주 받은 오물을 씻어 버려요. 존엄하신 왕이시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아, 슬프도다 누가 창의 힘으로 이 집을 구할 것이며, 누가 아레스처럼 스퀴티스의 활을힘껏 당기며 싸울 것인가? 누가 손에 칼을 빼들고용감하게 돌진할 것인가?

한참 제사를 드리던 중, 엘렉트라가 무덤 위에 놓여 있는 머리카락 타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이것을 바칠 사람은 자신과 오레스테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었다.

그때 무덤 뒤에서 오레스테스와 필라테스가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왔다. 남매는긴 세월 떨어져 있어, 엘렉트라는 처음 오레스테스를 낯선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동생을 알아보고, 그를 끌어안고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엘렉트라: 오오, 아버지 집안의 귀염둥이여, 눈물로 기다리던 희망이여, 이제 네 팔의 힘을 믿고 아버지의 집을 도로 찾아다오. 아아, 내게는 네 곱절로 사랑스런귀여운 얼굴이여!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무덤에 오기 전, 필라테스와 함께 델포이를 찾아갔었다. 아폴론 신의 뜻을 묻기 위해서였다. 신탁은 그에게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청동 채찍을 맞으며 도시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에게 신탁의 명령을 충실히 이루겠다고 맹약했다.

오레스테스: 내게 이런 모험을 명령하신록시아스(아폴론)의 강력한 신탁은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을 거예요. 만일 아버지의 살해자를 뒤쫓지 않는다면 이 뜨거운 가슴속에 차디찬불행의 겨울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내게 경고하셨어요.

남매는 아버지 아가멤논 무덤 앞에서 그렇게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복수는 언제나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탄탈로스가의 이 끊이지 않는 저주를 가슴 아파하며 코로스가 노래한다.

코로스: 아아, 이 집안에 뿌리내린 저주여, 재앙이 내리치는 피투성이 채찍의곡조 없는 노랫소리여. 슬프도다, 참을 수 없는 불행이여. 슬프도다, 가실 줄 모르는 고통이여.

오레스테스와 필라테스는 이국을 여행 하는 나그네로 변장을 하고 아르고스 궁으로 갔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문지기가 나타났다. 오레스테스의 억양은포키스 말투였다. 누가 봐도 그들은 포키스의 나그네다.

오레스테스: 집 주인에게 전하도록 하여라. 내가 소식을 갖고 그분을 찾아왔다고. 어서 서두르거라. 밤이 어둠의 마차를 타고 다가오고 있고, 나그네 손님을 반겨주는 여인숙이 닻을 내릴 시간이 됐으니까.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나타났다. 실로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모자의 상봉이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어머니였던가. 그러나 마음 다른 한편에서는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오레스테스의 마음속은 이런 반가움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요동을 쳤다.

클리타임네스트라: 나그네들이여,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시오. 이런 집에 어울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준비되어있소.

오레스테스는 자기를 포키스 다울리아에서 온 나그네라고 소개한다. 그는 포키스를떠나기 전에 스토로피오스 왕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왕이 아르고스에 가면 궁을 찾아가 오레스테스 부모님을 만나 소식을전하라 했다며, 왕의 사자(使者) 행세를 했다.

오레스테스: 포키스 왕은 내 갈 길을 묻고 나서 말하더군요. "나그네여, 그대가어차피 아르고스에 가신다니 잘 기억해두었다가 오레스테스의 부모님을 찾아가, 부디 잊지 말고, 그는 이미 죽었다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그의유골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영원한 추방자로서 객지에 묻기를 원하는지 친족들의 의사를물어보고 내게 전해주시오.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크게 슬퍼하며 낙담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아아, 슬프도다. 그 소식은 우리에게 완전한 파멸을 안겨주었소. 아아, 이 집안에서 쫓아버릴 수 없는 저주여, 이 가련한 여인에게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앗아 가는구나!

그녀는 하인들에게 나그네를 잘 접대하라는 지시와 함께 집주인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겠다며 내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절망적인 표정을 지은 오레스테스의 유모가등장한다.

유모: 그 애가 죽었다니 이 무슨 날벼락인지. 마님께서는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눈에는 웃음을 감추고 있었어요. 이 집안에서는 더없는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마님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 생긴셈이니까요. 이 소식을 듣자마자아이기스토스 그자도 기뻐 날뛰겠지요. 아이고, 기구한 내 팔자야!

아이기스토스는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꼈다. 실질적으로 아르고스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포키스에 있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있을, 오레스테스의 존재가 늘 바위처럼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성 많은 아이기스토스는 직접 나그네들을 만나 확인하려 했다.

아이기스토스: 이 소식을 전한 자가 직접 죽음을 목격한 것인지 아니면 뜬소문만 듣고 그렇게 전하는 것인지 내 직접 대면하여 떠보아야겠다. 그자도내 마음의 눈은 좀처럼 속일 수 없을테니까.

아이기스토스가 오레스테스를 만나기 위해걸어가며, 갑자기, 극도의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코로스의 기원(祈願)의 노랫소리가들려왔다.

코로스: 제우스여, 제우스여, 이제 살인의 피 묻은 칼끝이 일을 내려 하나이다. 아가멤논의 가문이 완전히 멸하든지, 아니면 그가 자유의 횃불을 켜며선조들의 왕권과 부귀를되찾게 될 것이옵니다. 신과 같은 오레스테스는 혼자 두 사람을 상대로 싸우려합니다. 부디 그가 이기게 해주소서!

갑자기 궁안이 소란스러워지며, 남자의단말마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기스토스: 아이쿠,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아이기스토스의 하인이 허겁지겁 뛰어 나오며 소리쳤다.

하인: 아아, 슬프다. 주인 나리께서 세상을떠나셨어요. 클리타임네스트라 마님은 어디 계시오? 보아하니 이제 마님의 머리도 정의의 칼을 받아 도마 위에 떨어질 시간이 머지않은 것 같아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왜 집안에서 소리를고래고래 지르는 게냐?"라고 하인을 나무라며 나타난다. 하인은 죽었다던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를 죽였다고 소리쳤다.

하인: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죽이고 있단말예요.

클리타임네스트라: 아아, 슬프도다. 간계로 죽인 우리, 이제 간계로 죽는구나. 누가 당장 살인의 도끼를 가져오라. 우리가 이길지 아니면 질지 어디 두고 보자꾸나. 일이 여기까지 왔으니 피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미 오레스테스와 필라테스가 칼을 들고 달려와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오레스테스의 칼에서는 핏방울이 떨어지 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멈춰라, 내 아들아, 애야, 너는 이 젖가슴이 두렵지도 않느냐? 잠결에도 이 어미의 젖가슴에 매달려 그 부드러운 잇몸으로 달콤한 젖을 빨곤 했는데.

오레스테스는 차마 어머니를 찌르지 못하고 친구 필라테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레스테스: 어떻게 할까, 필라테스여? 어머니를 죽이기가 너무나 두렵구나.

필라테스: 그러면 록시아스(아폴론)의 예언 은 어떻게 되며, 퓌토의 신탁과 우리의 맹세는 또 어떻게 되는데? 만인을적으로 만들지언정 신들을 적으로만들지는 말게.

오레스테스: 자네 말이 옳아. 좋은 충고고맙네. (클리타임네스트라를 향해) 자, 따라오시오. 그자 옆에서 당신을죽이겠소. 살아서 아버지보다 더 그를 사랑했으니, 죽어서도 그자 곁에잠드시오.

오레스테스와 필라테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앞세우고 아이기스토스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그곳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오레스테스의 칼에 죽었다. 그리고 코로스의 노래가 들려온다.

코로스: 정의의 여신께서 프리아모스의아들들에게도 마침내 엄중한 복수를하셨거늘, 아가멤논의 집에도 한 쌍의 사자, 한 쌍의 전사가 나타났다네. 퓌토의 신께서 보내신 추방자는 신의 명령을 받고 달려와 정해진 주로를 끝까지 달렸다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아버지의 복수지만, 한편으로 그는 모친을 살해한 죄를 범한 것이다. 비록, 그가 정의의 이름으로 어머니를 단죄했지만, 그가 짊어져야할 힘든 고통은 피할 수 없는그의 운명이다. 코로스가 다가오는 또 다른 비극을 예견 하며 노래한다.

코로스: 아아, 슬프도다. 이 무슨 끔찍한짓인가! 그녀는 비참한 죽임을 당하여 가고 없으나, 아아, 뒤에 남은 자에게도 고통의 꽃은 만발하리라.

그 누구도 한평생을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법. 보라, 여기 하나의 고통이 있는데 또 다른 고통이 다가오리라.

어머니를 죽인 후, 오레스테스는 친족살해의 피를 씻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벌써 검은 옷을 입고 머리에 뱀의 관을 쓴 복수의 여신들이 맹렬한 기세로 오레스테스를쫓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공포스런 모습에 오레스토스는 머리를 감싸고궁전을 뛰쳐나왔다. 그는 마치 미치광이 처럼 괴로운 소리를 지르며, 아폴론 신을 찾아 파르나소스 산을 향해 뛰어간다.

- 아이스퀼로스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 마지막 작품인 <자비로운 여신들>로 이어가겠습니다.

김종호

•사진 설명 고대 그리스의 돋을새김,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를 찌른 후,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돌아보고 있다. 뒤에 좋아하는표정의 엘렉트라가 마치 어머니도 빨리찌르라고 소리지르는 듯 하다.